평생 기대도 상상도 하지 않았던 행사를 앞두고
결혼에 대한 기대나 상상을 하지 않았던 건 내게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부모님은 '같이' 가는 행복에 대해 방향을 세우고 함께 걷자고 생각하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이 60을 바라볼 즈음에서야 남은 생이라도 애써 잘 지내보자, 고 다짐한 듯 보였다. 어릴 적에는 이 둘이 이혼하지 않고 사는 대부분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고 신체적 반응이 일어날 정도로 스트레스받았다. 어쨌든 '부부'로 사는 와중에 양육해야 할 아이가 있다면 개별적 일탈이나 가치관 같은 것에 구구절절 이유가 있어도 한 순간 무의미해질 수 있는 것 같다.
몸에 새겨진 듯 당연한 성차별, 20대 중후반부터 접한 여성 혐오 사건 등은 먼저 내가 '여성'으로 나고 자란 것에 자괴감을 들게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잘못된 언행, 그러니까 숨 쉬듯 들은 성희롱에 웃고 넘어갔던 순간이나 타인에게 가해지는 언어폭력을 듣고도 모른 척한 시간에 짓눌렸다. 여성으로 태어났음에도 여성에게 가해지는 여러 가지 폭력에 무감각했던 과거 때문인지 그때부터 항상 화를 내고 있었다. 죄책감 때문이었다. 다만, 아주 아주 조금씩 달라지는 분위기와 반복적으로 만나는 눈치 없는 사람들로 인해 에너지를 아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주 나중 일이다.
드라마, 영화처럼 결혼은 갑자기 다가오지 않는다. '정신 차려보니 식장이더라'라고 하는 말은 각자 발품을 팔거나 플래너를 통해 각 요소별로 계약을 하면서부터 밀려오는 기분이다. 애인과는 10년 친구였다가 연인으로 발전한 지 3개월 만에 프러포즈를 받아 결혼 준비를 이제 막 시작했다. 대행업에 근무 중인 애인은 직업 정신과 본연의 성격이 결합되어 꼼꼼하고 중간중간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다. 애인이 견적을 쓰고 일정을 갈무리하고 있을 때마다 나의 일인 것도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세상 이성적인 상태로 결정하게 된 건 대충 예상하고 있던 아래와 같은 이유다.
웨딩박람회를 비롯해 각종 지식을 습득하며 느낀 건 결혼식 자체가 견고한 패키지 상품인 옵션 장사라 당사자 둘의 규모 합치가 가장 중요하다. 발품을 팔다가도 플래너가 간절해지는 건 바로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에 대한 선택지가 너무나 방대해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발품 팔아 준비한 분들의 후기를 봐도 업체가 준비한 결혼패키지 상품과 개별 구매라는 선택지 말고는 차이가 없어 보였다. 여기에 대부분을 생략하면 비용이 훨씬 줄어들겠지만 프레임을 벗어나 하고 싶은 대로 준비하는 대에는 꽤 많은 시간과 노력, (설득해야하는 경우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든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정신없이 알아보고 가계약하고 견적을 몇 번 수정해야지, 하는 얘기를 하던 중 신혼 여행지는 어디 갈까? 우리 가는 시기에 특별한 행사를 하는 나라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다가 그래, 거기다! 그 순간부터 이미 해외로 나가있는 우리 마음. 어쩐지 친구일 때 제주 여행을 순식간에 정했던 날이 겹쳐졌다. 결혼식은 결혼식대로 깔끔하게 잘 해내고, 바로 다음날 맞이할 해외를 기다린다. 잘 먹고 잘 자고 운동하며 평생 기대하지 않았던 날이 무사히 지나가 둘만의 일상으로 얼른 복귀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