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내 집이라고 생각하는 곳이 너무 많아서
살림을 반반, 집안일을 반반 나누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다르고, 무엇보다 최근 가족과 살며 내가 도맡았던 집안일이라고 해봤자 극히 일부이며 함께 하는 데 있어 나만의 방식만을 강요할 수도, 그러는 건 잘못된 거 같다고 생각해서다. 우선 애인이 살던 집에 적응하는 게 최대 미션이었다. 혼자 잘 먹고 잘 다니고 잘 지내는 것과는 별개로, '함께' 살기로 한 집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눕던 침대, 앉던 책상, 주방을 오가다 잠시 앉아있던 소파, 책과 노트 등 모든 게 없기 때문에. 심지어 동선조차 달라져서 향수병 아닌 향수병을 겪을 뻔했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나머지는 내 몫이었다. 이전 집에서 했던 루틴을 하나 둘 하기 시작했고, 집안일 동선에 익숙해졌다. 양념통이나 반찬통이 어디 있는지, 세탁기나 건조기에 넣을 수 있는 적정량이 얼마인지 이런 것들. 스트레칭하고 산책을 했으며 책을 읽고 동네카페에 머무르기도 했다. 어차피 여기서 하반기까지 살아내야 하는데, 버티는 것보다 이왕 사는 거 재밌게 살아야 하니까. 마침 애인이 다니던 곳으로 피티 등록을 하고, 집에 있는 PC로 할 일이 생기니 조금 더 '집' 같은 느낌이 든다.
나고 자란 곳에서 벗어나 기숙사, 고시원, 원룸을 전전했으나 혼자였기에 빠르고 편안하게 적응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시도하고 도전하는 데 있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니까. 그동안 많은 제한 없이 산 덕분에 그럴 수 있었고. 물론, 지금 집에서도 누가 뭘 하라 마라 하지는 않지만 어쩐지 똑바로 잘 살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생각만 그렇고 더더욱 여유로운 모습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아마 직장을 구하게 되면 이 마음이 괜찮아질까? 꿈을 하루라도 덜 꿀 수 있을까? 오랜만에 매일 꿈을 꿨는데 피티 받은 날부터 숙면하고 있다.
아직 찾아야 할 곳은 많다. 미용실, 시장 등 네이버 지도를 켜지 않고 갈 수 있는 장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이것도 피티를 받은 후로는 어쩐지 움직일 때마다 힘들어서 잠시 멈춘 상태. 몸을 써야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가. 그래도 부지런히 내 집처럼 생각하며 돌아다녀야겠다. 그래야 지금을 최대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집을 가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