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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Oct 04. 2024

내 관심사 찾아가기

크게 재미는 없지만 내 모습 대로

자기 계발서를 읽으면 의욕이 솟을 때가 있다.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이 열풍을 몰고 오고 '미라클 모닝'이 유행하는 것도 그런 심리에서일 것이다. 나도 몇 달 전 자청의 '역행자'를 읽고 그렇게 의욕이 솟는 경험을 했다. 이 책을 읽고 뭔가 달라지고 발전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끼면서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고 뭔가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지는 것 같아 안 하던 걸 막 해 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안 해 보던 걸 해보며 즐거움도 느끼다가 다 포기하게 된 사연을 말해보고 싶다. 

  

우선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음악을 즐기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도 좋은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만 좋아하는 음악이 많지 않고 막상 무슨 음악을 들어볼까 생각하려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여름휴가지에서 아이들이랑 노래방에 가게 됐고 거기서 들은 몇 가지 음악이 마음에 들어서 이 기회에 노래 연습도 좀 할 겸 그때 들은 노래로 애플 뮤직에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봤다. 이 리스트에는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쿵푸팬더 4 마지막 곡으로 나온 'Baby One More Time' 등이 있다(이 노래는 잭 블랙이 불러서 정말 신난다). 들었을 때 마음에 꽂힌 곡들이라 그런가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두면 늘 듣기 좋다. 하지만 지금까지 모은 곡이 8개다. 오늘도 마침 유튜브의 쇼츠를 보다가 알게 된 오마이걸의 '비밀정원'을 추가했다. 하지만 자주 듣지는 않는다. 그래서 플레이리스트는 변화가 느리다. 


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워낙 사진을 안 찍다가 보니 누가 날 찍는 것도 싫고 풍경 사진 찍는 것도 귀찮다. 사진을 못 찍기도 한다. 그리고 외모에 워낙 자신이 없기 때문에 내 사진이 찍히는 게 싫고 다른 사람 앞에서 포즈를 잡는 게 너무 어색해서 싫기도 하다. 하지만 살던 대로 살지 않고 달라지고 싶어서 사진을 공부해 보기로 했다. 마침 집에 핸드폰으로 인생 사진 찍을 수 있게도 와 주는 책이 있었다. 지인이 낸 책이라서, 다른 사람들도 사길래 나도 한 권 샀는데 아주 쉽게 쓰여 있어서 나 같은 왕초보도 하나씩 배울 수 있었다. 음식 사진은 공중샷으로 찍고, 화면에 구획을 나누도록 설정을 바꾸고 대칭을 잘 맞추고, 담벼락 사진 많이 찍어보기 등등. 이런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공부하고 해가 지기 직전이나 직후 아름다운 햇살은 그 자체로 작품이라고 해서 가끔 그 시간대에 핸드폰을 켜기도 했다. 요즘은 하늘이 너무 예뻐서 이런 사진을 찍기가 참 좋다. 사진을 찍어두면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을 쓸 때도 활용할 수 있어서 좋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김에 인스타에도 올리기 시작했다. 놀러가서 맛있는 것 먹은 사진도 찍고 잠실 야구장에서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황혼을 찍은 사진도 올렸다. 사진을 올리면 지인들이 소소하게 반응을 보여주고 나도 거기에 답하면서 소통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다른 사람들의 인스타 사진을 자주 들여다보게 됐다. 하지만 어느새 사진을 올리는 일은 귀찮아졌고 남의 게시물만 보게 됐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심한 박탈감이 들었다.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소식은 하나같이 좋은 일들이다. 해외와 국내 여행, 맛있고 비싼 음식, 대단한 성과 등등. 어느새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할 텐데, 나만 이러고 있나? 하는 느낌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내가 올리는 사진들도 그런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누군가가 이런 델 갔고 이런 걸 먹었고 그에 대해 반응을 보여주는 대화가 진짜 소통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SNS로는 너무 잘 살고 있는데 막상 만나면 마음이 지옥인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런 우환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니 나도 이해는 하지만 소셜미디어에 속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렇게 현타 비슷한 걸 느낀 후 SNS와 멀어졌다. 핸드폰에서 인스타그램 앱도 지웠다. 덩달아 사진도 안 찍게 됐다. 사실 사진을 많이 찍으면 핸드폰에 사진이 너무 쌓여서 나중에 정리하는데 짐처럼 느껴진다. 


<역행자>를 읽다 보면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너무 필요하다는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8,9월에는 책도 많이 읽고 에세이 수업도 계속 들었다. 에세이 수업에서는 매주 글을 써서 내야 했다. 이렇게 숙제를 하다보니 늦게 잘 때가 많았고 잠이 부족하니 몸이 힘들어지고 그러다 보니 마음도 힘들어졌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는 게 이런 말인가 보다. 너무 피곤하니까 신경도 날카로워지고 감기도 자주 걸렸다. 그래서 에세이 수업도 2주 전부터 안 듣고 있다. 


이렇게 넘치던 의욕을 하나씩 꺼트리고 내 깜냥대로 살자고 생각하고 있다.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지 않고 사진도 안 찍는다. 음악도 가끔 시간 날 때 잠깐 듣지만 몇 개 안 되는 노래를 다 듣기도 전에 꺼버린다. 책도 읽지만 매일 정해진 분량만큼 꼭 읽자고 생각하지 않고 빌린 책도 꼭 다 읽고 반납해야 한다는 부담을 버렸다. 독서모임에서 읽는 양서도 좋지만 원래 내가 좋아하던 시시하고 읽기 편하고 마이너스러운 책도 찾아 읽고 싶을 때 읽고 있다. 어제는 <인생에 대해 조언하는 구루에게서 도망쳐라>라는 책을 빌렸다. 요즘 내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하지만 이 책도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 든 것으로 봐서 구루들 말 듣지 말고 자기 말 들으라는 책일 수 있어서 크게 기대는 안 하고 있다. 


책을 읽고 도파민에 중독돼서 너무 많은 걸 하려고 욕심을 부렸다는 걸 이제 알겠다. 갓생을 살면서 초능력자가 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크게 성공하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것을 쥐려는 욕심은 놀부 심보일뿐 아니라 그런 성공을 가져다주지도 않을 것 같다는 걸 요즘 느꼈다. 물론 이것도 많은 걸 해보겠다는 욕심을 부려봤으니 느낀 거겠지만 말이다. 


이제 내 진짜 관심을 찾아보고 싶다. 

나는 자연스럽고 바른 문장을 쓰는 데 관심이 많다. 내가 번역한 문장을 읽을 때 자연스럽고 의미가 아름답다고 생각되면 마음이 상쾌해진다. 그런 문장을 더 잘 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그 방법을 더 찾아보려고 한다. 번역 문장이 아니라 내가 쓰는 문장도 잘 써보고 싶다. 글을 쓰는 걸 어쩌면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면 내 나름대로의 예술에 시간과 정성을 들여보자. 단, 편안하게.


사람들과 따뜻하게 함께하고 싶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걱정하고 혹시 바보 같은 짓을 하지는 않는지 조심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 알아두라고 과시하는 게 아니라, 함께 있을 때 충만해지고 싶다. 그래서 더더욱 SNS가 필요 없는 것 같다. 하루 1포스팅으로 발전을 꾀하라고들 하지만... 블로그로 돈 벌 방법이 아직 많다고 하지만... 나도 그러고 싶어도 안 되는 걸 어쩌란 말이냐고. 


그 이상의 관심사는 아직 생각하지 말고 넣어두고 싶다. 그냥 요즘 같은 가을 하늘을 즐기면서 멍하니 있고 싶다. 밤에 일찍 자고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그렇게. 

  


야구보다는 사진 찍고 싶어서 간 늦여름의 잠실 야구장. 이곳이 돔 구장으로 바뀐다는데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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