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그린 그림 이야기 <빛 1>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느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5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세기 1: 3~5>
성경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한다. 이어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느니라"라고 2절이 이어지는데, 말씀에 따르면 가장 먼저 세상에 빛이 생겨났다. 빛은 어둠을 몰아낸다. 어둠은 빛을 가릴 수 없다. 아무리 깜깜한 방에서도 전구 스위치 하나만 켜면, 빛이 한가득이다. 주변 공간, 사물의 색과 형태가 보이기 시작한다.
빛의 속성은 신비롭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빛 '가시광선'만 해도 빛깔이 다양하지만, 볼 수 없는 빛 적외선, 자외선 등은 열작용을 하거나, 피부를 태우는 듯 사물을 변화시키면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한다. 이렇게 빛은 크게 '눈에 보이는 빛'과 '눈에 보이지 않는 빛' 둘로 나뉜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우리가 이를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말이다.
왜 빛이 먼저였을까. 창작자 입장에서 왜 하나님이 세상에 먼저 빛을 창조하셨을까를 생각해 본다. 어느 날부터 MBTI에서 계획자 성향인 J가 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어떤 색을 먼저 칠하고, 그리고,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계획 없이 그린다는 것조차 계획될 때, 손을 떼고 그리는 나로서는 그가 처음 만든 '빛'이란 게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창작자 입장에서 무엇을 먼저 색칠하고,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느낌에만 의존하지는 않기에 빛을 만든 하나님의 마음을 엿보고자 한다.
그리고 빛으로 낮을 만들고 나서 어둠으로 밤을 만들어 흑암을 버리지 않았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고자 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식집사 4년 차에 접어든 내가 매일 돌보고 키우는 반려 식물 문샤인, 산세비에리아와 상추, 방울토마토, 바질 등의 베란다 농작물들을 보면 낮과 밤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요즘은 LED 조명으로도 실내에서 식물을 키울 수 있다지만, 이 역시 하루 종일 켜두면 식물이 쉴 수 없어서 면역력이 떨어진다. 사람에게 활동하는 낮과 잠을 자고 쉬는 밤이 필요한 이유다. 기후 위기 현상으로 뜨거운 열대야가 계속되는 이 여름에도 밤의 선선함은 작은 위로가 된다.
낮과 밤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것도 생명이 성장할 수 있는 가장 큰 장치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물. 생명수와 같은 비는 한 여름에 내 사랑스러운 반려 식물들을 무럭무럭 자라게 한다. 7일간의 장맛비가 연속적으로 왔던 2024년 7월의 어느 여름날이 지나고 상추를 심은 흙에서, 수박 페페를 심은 화분에서 독버섯인 노란각시버섯이 생겼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보고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언니에게 선물 받은 아끼는 문샤인이 담긴 화분 흙 근처에 봉긋하게 올라온 자구를 보고 버섯 포자가 퍼진 줄 알고 눈썹을 찡그렸는데, 자세히 보니 문샤인 자구였다. 살짝 올라온 뾰족한 머리가 얼마나 귀여웠던지 바로 미간 주름이 펴지고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매일 아침이면 자구가 자란 상태를 보려고 창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렇게 귀여웠던 문샤인 자구는 무더운 여름이 보약인지 빛과 물을 머금고 따뜻한 기후 환경에서 쑥쑥 자라나 지금은 10cm 정도까지 키가 커 성인 손치고 작은 내 손바닥 길이만 해졌다.
여기까지가 낮의 열기, 밤의 선선함이 주는 열정과 쉼 사이에서 자라나는 내 사랑스러운 반려 식물 문샤인의 얘기다.
물에 관한 얘기로 넘어왔지만, 비단 생명을 자라게 하는 근원에 빛이 있음이 분명하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내 귀여운 반려 식물들에게 갈증 나게하고, 바다를 증발하게 한 태양 덕분에 빗물을 먹고 식물은 몸집을 키운다. 모든 생명의 성장이 같은 이치 아닐까.
인상파 화가에게서 빛은 곧 색이었다. 그들은 해와 달이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찰나의 순간들을 그림에 담아내기 위해 빠른 손놀림으로 붓끝에 물감을 묻혀 새벽녘의 어스름하고 새초롬한 풍경과 정오의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높은 채도의 사물들, 노을 지는 풍경 속 아름답고, 구슬픈 색감들을 캔버스에 담아 같은 장소, 다양한 시간대를 표현했다. 이들에게 밤은 그야말로 총천연색이었다. 네덜란드 화가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의 색을 보면, 알 수 있다. 밤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의 빛과 어둠이 대비되면서 그림 속 아름다운 흐름을 만든다.
어둠은 빛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빛은 어둠을 잠재운다.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눈이 아니라 촉감으로, 귀로 만지고 들으면서 주변 사물을 머릿속에 그리며 볼 수도 있는데, 눈을 감을 때조차, 눈꺼풀 너머의 빛이 미세하게 나가 감지된다.
"하나님은 왜 세상에 먼저 빛을 창조하셨을까?"란 질문은 "빛은 곧 생명의 근원이다"란 말로 나만의 정의를 내린다. 인상파 화가에게 빛은 곧 색이었다면, 내게 색은 감정과 심상이다. 생명은 마음에서 난다. 빛은 모든 사물을 뚜렷이 보게 한다. 눈으로 볼 수 없다고 모든 것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멀리 돌아왔다. 그래서 내 작품 <빛>은 세상의 다양한 색감 중 내 마음의 푸른 공명(共鳴)을 나타내고자 함이며, 색점이 점차 확장됨에 따라 만드는 패턴과 물결 모양은 일종의 빛 번짐 현상이다. 빛이 확장돼 가는 모습과 볕뉘를 바라봤을 때, 나뭇잎 사이 틈새로 보이는 빛을 상상하면서 가운데 모든 빛의 삼원색이 만났을 때 내는 비어 있는 백색광 즉, 종이의 원래 흰색을 남겨뒀다. 빛은 만날 때마다 점점 밝아지기 때문이다.
빛을 연구하고, 빛을 알고, 빛을 그리고, 빛을 표현하고자 한다.
빛날 '현', 알 '지' 빛을 알고 그 앎이 빛난다는 뜻의 내 이름 '현지'처럼.
2024년 8월 18일 주말 새벽을 깨워 끄적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