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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lucia May 30. 2024

엄마의 꽃밭

추모의 꽃

여느 엄마들이 그렇듯 나의 엄마도 꽃을 좋아하셨다. 아프시기 전, 엄마의 집 베란다는 화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계단 올라가는 난간에도 키 맞춰 화분을 올려놓으셨는데, 그 덕분에 건물이 온통 화사해 보였다. 옥상에는 상추 깻잎 오이 고추 등등 채소들을 심으셨다. 1층엔 화단을 만드셨고 대추나무 라일락나무를 심으셨다. 봄이 되면 라일락 꽃 향기가 동네입구부터 가득했고, 여름 가을엔 대추를 따 간식처럼 식탁에 놓아두셨다. 지나가며 대추 하나를 입에 물면 달고 아삭했다.      


라일락 꽃 향기에 취해도 보고, 엄마가 옥상에서 키우신 채소들을 잘도 받아먹었음에도, 엄마의 일손을 덜어드린 적은 없었다. 식물들이 커가면 화분도 갈아줘야 하고, 채소들이 열매 맺을 땐 기다란 막대기도 세워줘야 하며, 기타 등등 이것저것 보통 손 가는 일이 아니었음에도, 엄마는 늘 혼자 해내셨다. 장성한 딸년들은 맨날 싸돌아다니기 바빴고, 집에 있는 날이면 해가 중천에 뜨도록 밥도 안 챙겨 먹고 잠만 퍼질러 잤으니, 엄마는 혼자 하는 게 편하셨으리라. 그래도 가끔 손보태주길 청하시면, 되려 이런 걸 귀찮게 왜 하는 거냐며 타박이나 해댔다. 가끔 집에서 바퀴벌레나 이름 모를 이상한 벌레들이 보이면, 다 저 화분 탓이라며 짜증을 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내가 등짝스매싱을 날려주고 싶을 만큼 얄밉고 못됐다.     


혈액암 진단을 받기 전 이사준비를 하시면서, 포장이사 업체에 견적을 받는데, 업체 측에서 수십 개에 달하는 커다란 화분들을 보자 대놓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포장이사에 화분을 포함시키시려면 금액이 많이 추가되고, 금액을 떠나서 본인들도 매우 부담스러우니, 고객님이 자차로 직접 옮기시기를 권했다. 엄마는 몸도 안 좋고, 아파트는 아무래도 장소가 협소하니, 기존 화분들의 5분의 1 정도로 화분을 줄이셨다. 고르고 골라 애정하는 것들만 챙기셨고, 시장 갈 때 쓰시던 구루마를 이용해 자식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직접 화분을 옮기셨다. 걸어서 20분은 족히 되는 새집까지, 성당 가는 길에, 마트 가는 길에, 오가며 화분을 나르셨다.     

 

백혈병 투병이 시작되고, 백혈구 수치가 떨어져 격리실 생활이 시작되고 퇴원할 때쯤, 간호사가 퇴원 후 가정에서 어떻게 위생관리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집에서도 가급적 마스크를 쓰고, 음식은 반드시 익혀먹으며, 과일이나 채소 심지어 김치마저도 주의해서 먹어야 되는 것 등등을 알려주었는데, 그중에는 집에서 식물을 키우지 말라는 것도 있었다. ‘엄마 집에 화분이 열 개 이상은 되는데요?’라고 물었더니 환자가 퇴원하기 전에 보호자들이 빨리 정리하시라고 당부했다. 엄마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투로 간호사에게 재차 묻고, 회진 온 담당교수에게도 물었지만, 흙속에 있는 곰팡이 균들이 일반인에게는 상관없으나 백혈병환자에게는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며 엄포를 놓았다. 남동생은 하루이틀 사이에, 엄마가 직접 오가며 옮겨놓은 그 귀한 화분들을 아파트 화단 앞에 내려놓았다. ‘가져가셔도 됩니다’ 메모를 적어두니, 열댓 개는 되는 화분들이 금세 사라졌다고 남동생은 전했다. 엄마는 고르고 골라 챙겨 온 그 애정템들과 작별인사도 없이 이별을 맞이했다.     


엄마의 장례 때, 입관식날 엄마와 작별하며, 관에 장미꽃을 채워드렸다. 장미꽃 가운데 누워 장미꽃을 손에 쥐고, 엄마는 하늘로 가셨다. 그 후로 엄마의 추모관에 갈 때면, 항상, 꽃다발을 준비해서 간다. 꽃값도 많이 비싸져 꽃 대여섯 송이에 잡풀 넣어 만든 다발이 3~4만원이다. 아무리 길어도 일주일이면 시들어 버리는 꽃다발에 3~4만원을 쓰는 것이 예전에는 좀 아까웠는데, 엄마에게 선물한다고 생각하니 아깝지 않았다. 추모관에 다녀와서는 우리 집 엄마사진 옆에 꽃을 둔다. 엄마 덕분에 거실이 환해지고 집에 꽃향기가 난다. 예전에 엄마집에서 느껴지던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느껴진다.

매일매일 물을 갈아주고, 시든 잎을 골라내며 관리해주다 보니 미안함과 후회가 밀려온다. 자식들 누구도 거들어주지 않던 식집사 일을 부지런히도 해내던 엄마. 오이 고추 상추를 따 깨끗이 흙을 털고 씻어 밥상 위에 올려주었던 엄마. 그 수고와 공을 알아준 적이 없어 죄스럽고 민망하다. 이제 와 엄마 사진옆에 올려놓는 꽃다발이 무슨 소용이겠냐만은, 이렇게라도 엄마에게 나의 참회를 전하고 싶다.


하늘나라 엄마의 꽃밭엔 무슨 꽃이 있을까.

곰팡이균 걱정 없고, 바퀴벌레 나온다고 타박하는 못된 딸년들 없는 하늘나라에서,

일주일 만에 시드는 값싼 꽃다발이 아닌, 매일매일 새로 피고 지는 꽃들속에서 흠뻑 꽃향기에 취해 계시길. 


엄마. 꿈속에서 구경 갈게. 엄마의 하늘나라 꽃밭으로.

사랑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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