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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lucia Jul 30. 2024

엄마의 밥

나는 유난히 콩밥을 좋아하지 않았다. 콩을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콩자반도 잘 먹고, 두부나 두유도 잘 먹는다. 하지만 밥에 든 콩은 영 별로였다. 그렇다고 흰밥만 좋아한 것은 아니다. 나는 잡곡밥 고구마밥 감자밥 콩나물밥 곤드레밥 등등 흰밥 이외의 여러 가지 밥들을 그다지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콩밥만 예외였다. 어쩌다 엄마의 콩밥이 밥상 위에 올라오면, 나는 빈 접시를 가져와 콩들을 골라내 따로 담아 놓았다. 그러면 엄마는 투덜대시며 본인 입에 콩을 우걱우걱 넣으셨다.


20대가 되고 학교를 졸업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족과 친구 이외의 다소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콩밥을 만나게 되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콩밥을 먹긴 했다. 그래도 집에서는 여전히 콩을 골라내며 먹었다. 엄마는 애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이게 무슨 짓이냐며 타박하셨지만, 그래도 내가 골라낸 콩을 여전히 본인 입으로 해결해 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밥상 위에 올라온 밥에는 쌀이 아닌 하얀 알갱이들이 섞여있었다. 잡곡이겠지, 하고 한입두입 먹는데, 이것은 분명 콩 맛이었다. 근데 모양은 땅콩을 간 것처럼 하얀 알갱이들이었다. 몇 숟가락 더 먹으니 엄마가 씩- 웃으셨다. 그 하얀 알갱이들은 콩이 맞았다. 내가 하도 콩밥을 안 먹으니 엄마가 콩을 적당한 크기로 갈아(도무지 젓가락으로 골라낼 수 없는 크기로) 밥에 넣으신 것이다. 당연히 골라낼 수 없었기에 나는 인상을 쓰며 먹었다. 엄마는 콩이 몸에 좋다며, 특히 여자에게 좋으니 제발 이렇게라도 먹으라고 말씀하시며 한 번 더 웃으셨다.


그 이후로 나는 그럭저럭 콩밥을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먹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부장님 차장님들과의 점심시간 식사자리에서 콩을 골라내며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먹고 먹고 먹다 보니, 콩을 갈아서 밥을 지어내신 엄마의 노력이 더해져, 나는 콩을 골라내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엄마는 가끔 내가 기운 없어하면 찰밥을 해주셨다. 야근에 지쳐 보인다거나, 감기나 배탈 등 잔병치레를 하고 난 뒤, 혹은 삼복더위 여름날 더위에 지쳐 매가리가 없어 보일 때 등등, 그럴 때면 밥상 위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찰밥이 올라왔다. 엄마의 찰밥은 일반적인 잡곡밥에 대추 밤 잣 등등 온갖 맛 좋은 열매들이 섞여있어 정말 맛있었다. 입맛이 없어 반찬에 손이 안 가면 밥이라도 꼭꼭 씹어 먹으라고 하셨다. 밥만 먹어도 든든했다. 그렇게 며칠 엄마의 찰밥을 먹으면 기운이 났다.


나의 20대 어느 날, 나는 이별을 했다. 나는 나의 연애와 이별에 대해 엄마에게 시시콜콜 재잘대는 수다스러운 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다 아셨을 거다. 귀가가 늦고, 옷차림과 화장에 신경을 쓰며, 밤에는 종알종알 길게 통화하는 소리가 방문 틈으로 다 들렸을 테니, 그걸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역시나 같은 맥락으로 이별도 충분히 알아차리셨을 거다. 내가 이별이라는 큰일을 치르고 며칠 시들시들한 표정으로 출퇴근을 할 때면, 엄마의 밥상엔 찰밥이 올라왔다. 본인이 알아차린 것을 내색하지 않으시고, 정성스레 찰밥을 지어주신 엄마의 마음이 위로가 되어 코끝이 시큰했다. 훌쩍거리며 꾸역꾸역 밥을 삼키는 내게 엄마는 말씀하셨다. ‘체하지 않게 국이랑 같이 천천히 먹어.’ 엄마의 그 위로에 나는 이별 따위 훌훌 털어내고 다시금 기운을 냈다.     




어쩌다 밖에서 먹는 밥에서 콩밥을 만나면, 여지없이 엄마생각이 난다. 성인이 되었어도 세 살 배기처럼 콩을 골라내던 딸에게 콩을 갈아 밥을 지어주시던 엄마. 그 애씀에 대한 감사의 마음, 죄스런 마음이 엄마생각에 겹쳐 함께 밀려온다. 한 해 한 해 더욱더 버거워지는 삼복더위 폭염을 만나는 요즘이면, 나는 삼계탕 장어구이 추어탕 꼬리곰탕 등의 보양식은 생각도 안 나고, 그저 엄마의 찰밥이 먹고 싶다. 다듬는데 손 많이 가는 대추 밤 은행 잣이 아낌없이 들어간, 씹는 입에서 쩍쩍 소리가 날만큼 찰기 가득했던 엄마의 찰밥. 그렇게 맛있었던 그 밥이 그립다.          


내가 해도 그 맛이 날까? 한번 도전해 볼까? 엄두가 나지 않지만, 네*버에 한번 검색이나 해봐야겠다.      


    

엄마.

손수 대추씨를 발라내고, 딱딱한 밤껍데기를 깎던 엄마의 손을 기억해.

가을이면 등산길에 은행, 잣을 등산가방 가득 주워와 몇 날 며칠을 다듬고 손질하던 엄마.

거실과 베란다에 가득, 열매들을 늘어놓고 말리고 까고 말리고 까던 그 시간들.

정말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그 시절이, 참 그립네.


엄마.

맛있는 밥, 건강한 밥 해줘서 정말 고마워.

나에게 그런 사랑과 위로를 전해줘서, 나에게 그런 기억을 남겨줘서 정말 고마워.

그 기억으로, 이 고단한 여름을 잘 견뎌내 볼게.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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