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Kleio
#역사의 시작
우리가 흔히 서양이라 일컫는 문화와 세계의 태초는 유프라스강 티그리스강 유역에서 출발한 인류 최초의 문명, 수메르 문명으로 시작한다. 이후 이집트-페르시아-그리스로 문명이 꽃을 피우는 흔히 오리엔트라 불린 이 시대와 세계를 이어가며 가장 찬란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수천 년간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헤로도토스. 페르시아의 치하에 있던 도시 할리카르나소스(현재 튀르키예의 보드룸) 태생의 역사가가 이 위대하고도 눈부신 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 직접 세상을 탐구하며 글로써 이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것이 <역사, Historiae>이며 바로 서양 최초의 역사로 기록된 것이다.
#최초의 역사책
"내가 들은 바로는..." 최초의 역사책에서 등장하는 출처를 밝히는 방식이다. 당연히 어떠한 저서 혹은 저술로부터 참고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그는 모든 지식을 자신이 들은 것과 답사를 통해 알아낸 것을 종합하여 써 내려갔다. 그럼에도 최대한 합리적인 선에서 서술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를테면 신과 관련된 이야기로 당시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의 삶에 깊이 그리고 때로는 비현실적 일정도로 관여되거나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그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에는 꽤나 직관적으로 의구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렇게 지지부진한 전승마저도 충분히 설명을 덧붙여 모든 것 하나하나 빠짐없이 전하려는 노력에서 여타의 영웅적 미담과 신격화를 중점으로 다룬(그것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다른 역사서와 큰 차별점을 두는 것이다.
#솔론의 행복론
이 최초의 역사책이 가지는 의의에 하나를 더 덧붙이고자 책에서 등장하는 한 사례를 소개할 것이다.
바로 리디아(현재 튀르키예의 서쪽지방)의 국왕이었던 크로이소스와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시인 솔론의 관한 이야기이다. 당시 리디아 왕국은 크로이소스의 치세에 막강한 대국으로써의 위용을 떨치던 시기였는데, 이때 많은 그리스의 현자들이 사르데스(리디아의 수도)에 찾았는데, 솔론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크로이소스의 입장으로서는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터, 현자 중의 현자 솔론에게 현재 세상에서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인지 묻고자 한다. 허나,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다른 이들이 순위에 오르자 불편해하고 이로부터 대화가 이어진다.
"아테네의 손님이여, 그대는 나를 그와 같은 서민만들도 못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소이다. 나의 이 행복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요?" 솔론이 대답하였다.
"크로이소스 왕이시여, 왕께서는 저에게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물어보고 계십니다.-(중략)- 왕께서 막대한 부를 가지시고, 많은 백성을 통치하고 계시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물으신 일에 대해서, 왕께서 좋은 생애를 마치셨다는 것을 아실 때 까지는 저로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제 아무리 유복한 사람이라도, 만사가 잘 되어가는 평생을 끝마칠 수 있는 행운을 만나지 않는 한,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사람보다도 행복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는 없습니다.
-(중략)- 인간은 누군가가 죽을 때까지 행운이 있는 사람이라고 부를지언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삼가야합니다. 인간의 몸으로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역사>, 크로이소스와 솔론의 대화 중
#<역사>의 의의
솔론의 행복론은 이 책에 역사서로써의 의의를 더하여준다. 교훈과 철학적 질문의 태초를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음을 우리는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는 것인데, 최초의 역사책으로부터 이어진 여러 역사서들이 담은 인간에 대한 물음과 고민과 고찰 등이 바로 이 이야기부터 시작하였던 것을 깨닫게 된다. 벅찬 감정을 안고 제1권 kleio를 끝낸 시점에서 이 <역사>라는 고전은 세세한 정보와 탐구 및 답사를 통한 지형의 섬세한 묘사를 제외하고라도, 시시콜콜한 전승으로부터, 시대의 흐름, 문화와 전통, 여러 민족의 분열과 태생, 인간의 번영과 파멸을 모두 망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적 가치가 매우 뛰어난 고전 중에 고전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