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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Jun 01. 2024

성장은 아니고 그냥 변화

모든 변화에 유연하게.


날카로운 생각이 좋았던 때가 있었다. 아니 즐겼던 것 같다. 오히려 밝은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 어려웠다. 왠지 더 날것의 감정 같아서였을 것이다. 마음대로 웃고 행복해하면 내 속이 낱낱이 파헤쳐지는 느낌이었달까. 내가 어떤 것에 즐거워하고 그것을 두고 어떻게 웃는 사람인지 다 들키는 느낌이었나 보다. 그게 두려웠다. 내가 느끼는 지금의 즐거움이 영원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 찰나의 순간 이후에 오게 될 무료한 나날들을 마주하기엔 감정을 다루어내는 역량이 턱없이 부족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두려웠다. 아마 스스로에 자신이 없고 외로워서였을 것이다. 심심하진 않은데 외로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나를 더 안전하게 보호해 줄 생각 속으로 구덩이를 파 들어갔다. 내가 알고 마주한 우울함은 좀 포근해서였다. 이보다 더 한 우울은 없을 것 같단 생각으로 일부러 더 깊은 생각을 만들어내고 있었으니까. 그럼 앞으로 다가올 조금의 불행은 그럭저럭 잘 견뎌내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를 조금만 아는 타인을 만나는 일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지나고 보니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어쩌면 그런 생각에서 조금은 나오게 된 것 같다. 이런 것들을 성장이나 성숙?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쉽게 이해되는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변화를 했다.

어떤 감정에서 다른 감정으로 넘어가기를 결정했다는 것 자체가 변화다. 이제 사람들 앞에서 밝은 척하고 그들을 관찰하다가 집에 와선 우울해하는 패턴을 끊어보자. 난 매번 진지한 사람도, 그렇다고 매번 밝은 사람도 아니다. 그냥 난 그때그때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고 그런 감정이 올라올 때 충분히 그 감정을 느끼고 다루어내면 그뿐이다. 난 음흉한 사람도, 그렇다고 완전히 솔직한 사람도 아니다. 그냥 나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보통의 사람일 뿐이다.

이게 인정까지 필요한 일이었다니. 쓰면서 생각해 보니 좀 웃기다.


결국 내가 평범한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쓰라림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게 자신이 없고 세상을 대하는 게 두려워서 일부러 만들어냈던 날카로운 생각들이, 사실은 나는 남들처럼 평범한 인간이어선 안 되고 조금은 특별한, 어떤 면에서는 뛰어난 인간이어야 '해'라는 마음에서 나온 걸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끄러웠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인간들을 진지하지 못하고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하는 그저 그런 평범하고 우매한 대중이라고 생각해 왔던 거니까. 진지한 게 진리는 아니어도 진지해질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 것도 부끄럽지만 맞으니까.


다른 것으로 차별화를 둘 수 없겠다고 생각하니 감정으로 두려고 했던 것 같다. 물론 변한 지금의 생각도 오롯이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 이제는 무언가를 좀 더 진리나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대신, 내게 맞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싶어진 것 뿐이다. 이게 성장이라면 성장일 테고 성장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냥 변화일 것이다.


성장에 집착하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 진정한 성장, 진정한 어른, 그런 거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인간이고 싶다. 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뭐든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조금 더 유연하게 다루어낼 줄 아는, 그런 인간이고 싶은 마음뿐이다. 앞으로의 내게 바라는 건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이젠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내가 아끼는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를 채워보고 싶다. 내가 가장 아끼는 게 꼭 내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나보다 더 약한 존재들일 수도 있고 내가 선망하는 존재들일 수도 있다. 그런 것들에 더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보는 삶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꼭 나를 주장하지 않아도, 꼭 내가 나를 그렇게 꽁꽁 싸매고 보호하지 않아도 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어쩌면 그런 것들이 아예 없다 하더라도 그냥 무료하고 칙칙한 일상을 사랑해 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을테니.


인간은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생명체들이라 매번 방법을 궁리하는 걸지도 모르고.


어찌 됐든, 난 다른 생명에 비해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존재도 아니다. 적어도 우주 입장에선 그럴 것이다. 개미만 한 존재. 지구에 있는 먹잇감을 먹고사는 그저 그런 세포 중 하나. 더 이상 가면으로 나를 감싸고 진지한 생각으로 나를 둘러싸 남들과 달라지려는 노력을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난 노력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니까. 그냥 난 살아갈 뿐이고 예뻐 보이거나 멋져 보이지 않아도 괜찮은 그저 그런 흔한 사람이다. 이 문장에서 핵심은 '괜찮은'이 된다면 좀 위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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