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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로빈 Dec 28. 2022

[부여] 부여 궁남지 / 에필로그

왕실 정원에서 즐기는 신선 체험

부여 당일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궁남지였다. 동선과 일정에 맞추어 뒤에 놓기는 했지만 가장 기대했던 곳이었다. 연못에 푸른 연잎이 가득 찬 모습을 보고 싶어서 부여는 반드시 여름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6월 초에 방문했을 때, 기대했던 대로 연잎이 파랗게 펼쳐져 있었고 평일이어서 그런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따뜻함과 뜨거움을 넘나드는 햇볕 아래를 걸으며 여기저기를 돌아본 후라 조금 피곤했다. 원두막에 올라가 다리를 뻗고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힐링이 되었다.






"3월에 궁의 남쪽에 연못을 파서 물을 20여 리나 끌어들였다. 네 언덕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方丈仙山)을 모방하였다." -『삼국사기』백제본기 무왕 35년(634)


부여 궁남지는 백제 무왕이 궁궐 남쪽에 조성한 왕실 정원이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공 연못이다. 도교 사상에 따라 가운데에 신선이 사는 듯한 섬을 만들어 나무 등을 심고 구경하기를 즐겼다. 이는 전통적으로 이어온 연못의 형태이며 경주 월지와 창덕궁 부용정 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궁남지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연못의 기초로서 한반도의 역사를 타고 전해졌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정원 조성 방식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현재의 궁남지가 백제시대에 만들었던 연못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백제가 멸망한 후 훼손된 궁남지를 1960년대에 부여박물관장과 지자체 등이 노력을 기울여서 사적으로 지정하고 부지를 확보하여 복원하였다. 이 자리에서 백제 기와 및 토기 등의 흔적이 발견되었지만 뚜렷하게 왕실 유물이라 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또한 연못 중간에 세운 '포룡정'이라는 이름의 건물과 뭍까지 연결한 다리도 기록에 근거하여 만든 것은 아니다. 정확한 모습과 규모는 아직 알 수 없지만 1930년대에 일본인이 그린 부여지도와 학자들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지금의 크기보다 훨씬 컸다고 한다. 사실 연못을 둘러보며 예상보다 꽤 넓다고 생각했는데 이보다 더 컸다니 놀랍다. 그 옛날에 어떻게 땅을 파서 물을 끌어왔는지 대단하다. 관련 유물 및 기록 발굴과 연구를 이어가며 제모습을 찾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비록 백제 시절의 연못과 꼭 같지는 않다고 해도 지금의 우리가 궁남지를 기억하며 즐기기에 충분했다. 길이 잘 다듬어져 있어서 걷기 편했제각기 다른 크기로 펼쳐진 연잎들을 구경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평소에 연잎차 특유의 은은한 향과 연잎밥의 건강한 맛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자연 속에 살아있는 연잎을 보니 새로웠다. 연꽃이 절정을 이루는 7월이 되면 축제가 열리며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에는 아직 꽃이 피기 전이라 아쉬웠지만 방문객이 많지 않아 나름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궁남지 내부에는 조경을 바라보며 브런치를 먹을 수 있는 카페가 있다. 방문객으로 붐비는 때에는 테라스에 자리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전망이 멋있는 데다가 샌드위치와 밀크티가 맛있었고 직원분도 친절하셔서 만족스러웠다. 여행 중간에 점심을 먹기는 했지만 많이 걸으니 배가 너무 고파서 이보다 더 알차 보이는 세트로 주문했다. 나처럼 의기양양하게 주문하고는 남기는 사람이 많은지 직원분이 만류하셨고, 조금 아까웠지만 눈을 낮추어 사진에 있는 샌드위치로 메뉴를 바꾸었다. 먹어보니 꽤 포만감이 있어서 왜 그러셨는지 알 것 같았다.


오래전부터 부여 여행을 계획해 왔다. 하지만 반드시 여름에 방문해야 한다는 고집과 예상치 못한 일들로 인해 미루다 코로나가 발생하는 바람에 더 늦춰졌다. 드디어 올해 다녀와서 뿌듯하다. 부여 여행에 대한 글을 쓰며 기록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으나 정작 나는 반년이 지나서야 부여에서 보고 생각한 내용을 정리했다는 것이 조금 민망하기도 하다. 그새 많이 잊어버린 기억이 사진을 통해 하나씩 떠올랐고 추운 겨울날 따뜻했던 여름날을 추억했다.

어릴 적에는 삼국시대 중 어느 나라가 가장 좋은지 물어보면 망설임 없이 고구려라고 답했고, 존경하는 역사 속 인물을 꼽으라면 광개토대왕이라고 말했다. 강하고 힘 있는 나라와 지도자의 원형을 우러러보던 시절이 지나며 백제 마음이 기운다. 물론 고구려와 신라 모두 나름의 강점을 발휘한 국여서 지금의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백제의 우호적인 교류 능력과 담백한 아름다움이 좋다. 이번에는 하루 안에 걸어서 닿는 코스로 구성하다 보니 부여 나성과 백제문화단지는 제외했다. 다음에는 이를 포함하여 익산 및 공주와 연결해서 돌아보면 백제의 매력에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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