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 사랑의 추억
영화과 학생들이 영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어릴 때 부모님과 극장에 갔는데 그때 경험이 좋았다. 둘째, 어릴 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해서 집에 주로 혼자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영화를 많이 보게 되었다. p.59
<야반가성>은 지금의 나로서는 명작이라고 말하기 힘든 영화였다. 하지만 '다시 보니 별로네'라는 말로 간단히 감상을 정리할 수 없는 마음도 분명 존재한다. 이 영화는 그날의 숨 가빴던 하굣길, 상영관 뒷문에 걸린 벨벳 커튼의 감촉, 세피아 톤 스크린을 마주했을 때의 설렘, 직원 몰래 영화를 한 번 더 봤을 때의 떨림과 하나가 되어 내 마음속 '특별한 영화' 폴더에 이미 저장 완료 되었기 때문이다. 감독이 웃으라고 하면 웃고 울라고 하면 우는 게 가능한 나이에 봤던 것도 그 특별함에 무게를 더하는 데 한몫했다. p.37
나는 로즈가 잭을 추억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라고 생각했다. 모두 허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그러니까 만약 실제 이야기였다면 그런 일은 불가능했을 거라고. "잭을 어떻게 그렇게 떠나보낼 수 있어. 그가 물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이 잊히지 않아. 나였다면 그 모습이 계속 떠올라서 도저히 살 수 없었을 거야. 같이 죽었을 거야." 언젠가 내가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자, 친구는 내게 답했다. "그러니까 로즈에게는 더 잘 살아야 하는 몫이 있는 거야. 잭이 선물해 주고 간 삶이니까." 그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문득, 어쩌면 함께 죽는 것이 더 비현실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145
영화는 원본과 복제본의 가치에 차이를 두지 않았고, 대량으로 복제되어 어디로든 유통될 수 있었다. 소수의 특정 계층이 오라나 작품의 가치를 독점하는 일은 벌어질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영화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였다. 이전의 모든 예술이 상층에서 하층으로 이동했다면, 영화는 그 움직임을 달리한다는 점. p.228
"남들은 좋다는데 나만 별로고, 남들은 별로라고 하는데 나만 좋은 어떤 지점에서 취향이 나타날 것 같아요." p.204
나는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영화를 통해 보고 싶었던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시선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까 타인이 보는 세상을 나도 보고 싶었다. 카메라가 그 일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p.249
영화를 보는 이유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를 것이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센티해지기 위해, 센티해지지 않기 위해, 울기 위해, 웃기 위해, 멀미가 날 정도로 지루하게 이어지는 일상의 사슬을 두 시간가량이라도 끊어놓기 위해, 이 지겹고 답답한 '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p.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