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중국, 인도를 추격하고 있다. 한국보다 빠르게.
현금을 안 들고 다닌 지 벌써 몇 년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한국은 거의 모든 곳에서 카드 결제가 가능하다. 카드지갑 하나 들고 다니면 크게 불편할 일이 없다. 대부분의 점포의 포스기에서 메뉴 금액과 카드결제 모듈이 연결되어 있어, 가게 쪽에서도 편하게 카드결제를 할 수 있다. 게다가 삼성페이를 쓸 수 있다면 핸드폰 하나로도 생활이 가능하다. 최근 들어 QR코드로 결제할 수 있는 카카오페이나, 정부 주도의 제로페이도 종종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드를 꺼내서 1초 만에 결제하는 것 대신, 핸드폰 어플을 (미리 설치하고) 기동 하는 것이 더 편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카드로 인한 결제가 압도적으로 많다.
반면 중국이나 인도는 카드결제시대를 건너뛰고, 현금결제에서 바로 모바일 결제로 패러다임 시프트에 성공하였다. 중국은 오히려 현금을 받지 않고 위챗페이만 받는 가게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심지어는 노점상에서도 현금을 취급하지 않는다. 위챗페이가 없는 외국인이 물건 구입을 못 하는 사태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중국의 여러 음식점은 앉은자리에서 주문하고, 바로 테이블에 붙어있는 코드로 결제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전보다 적은 직원으로도 매장관리가 가능해졌다.
세계 경제 규모 3위인 일본은 오히려 반대다. 현금결제 비율이 *80%에 육박하고, 그 외 결제 수단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백화점이나 대형 체인점에서만 카드결제가 가능하고, 작은 개인 가게에서는 카드결제가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업종이나 규모에 따라 카드결제 수수료의 편차가 크다. 심하면 결제 수수료가 10%가 넘어가는 경우도 있어, 굳이 카드결제 인프라까지 구축하면서 카드결제를 받는 가게가 늘지 않는다. 매일 수십 분에 걸친 현금 정산작업을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까지 카드결제를 도입하지 않는다. 일본 경제산업성도 위기감을 느끼고 현금결제 비율을 낮추려는 계획을 잡았다. 다만 타임라인이 세계적인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다. 2025년까지 60%, 장기적으로 세계적인 수준인 20%까지 낮추는 것이 목표다.
* 한국은 20% 미만
이런 일본이, 2018년 12월을 기점으로 빠르게 변화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인도 최대의 결제 서비스 Paytm과 야후재팬이 힘을 합쳐 Paypay라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야후 어플에서 QR코드를 읽으면 결제가 되는 서비스다. 일본에서 카드로 결제하려면 길게는 1분이 넘게 걸리기도 하지만, 이 방식으로 결제를 하면 수초만에 결제가 완료된다. Paypay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파격적인 마케팅으로 포문을 열었다.
[점포]
초기도입료 : 0엔
결제수수료 : 0%
입금수수료 : 0%
모두 공짜다. 카드결제의 수수료를 전혀 낼 필요도 없으면서, 현금 관리의 어려움도 없다. 점포 입장에서는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별로 없다. 심지어 점포를 소개하여 가맹점이 되면, 소개한 쪽은 1500엔(15000원), 소개받은 쪽은 1000엔(10000원)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야후재팬의 모회사인 소프트뱅크의 영업력을 활용하여 출시 전부터 많은 가맹점을 확보했다. 일본 전국 모든 지역을 커버하는 대형 체인점, 전자제품 양판점, 편의점, 호텔, 여행사 등 일상적인 결제나 큰 단위의 결제가 이뤄지는 곳이 가맹점으로 확보되어 있다.
사실 서울시의 제로페이도 결제 수수료를 0%를 목표로 운영계획 중이다. PAYPAY와 동일하다. 하지만 이용자가 모이지 않은 결제 서비스는 의미가 없다. PAYPAY의 이용자 마케팅을 한 번 살펴보자. 전례에도 없던 '100억엔줘버리는캠페인'을 하고 있다. 한화로 1000억이다. 결제 수수료도 없는 서비스에 무려 1000억이라는 마케팅 비용을 쓰는 것이다.
[이용자]
신규 가입자 500엔 증정
최대 25만 엔 결제금액까지 결제한 금액의 20% 무조건 캐시백
최대 10만 엔까지, 최대 확률 10%으로 결제금액 100% 캐시백
250만 원까지는 무조건 20% 할인된 금액으로 결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운이 좋다면 10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최대 10%라니 혜자스럽다. 가격이 딱 100만 원 수준인 아이패드를 팔고 있는 전자제품 양판점이 마침 Paypay의 가맹점이다. Paypay로 아이패드를 구입하려는 손님이 급증했다. 전자제품 양판점 비꾸카메라와 애플이 반사이득을 얻었다.
조금 더 뒷 이야기를 살펴보자. 야후재팬은 소프트뱅크의 자회사다. 그리고 같이 서비스하고 있는 인도의 Paytm도 소프트뱅크에게 1.6조 원가량의 투자를 받았다. 또 소프트뱅크가 대주주로 있는 중국의 알리바바로부터도 투자를 받았다. 즉 소프트뱅크 제국에서 운영하는 서비스다. 그래서 Paypay의 QR코드는 알리바바의 알리페이로도 결제가 된다. 소프트뱅크는 일본 인바운드 20조 원 규모의 중국 관광객까지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소프트뱅크 손정의는 플랫폼 시장을 잡기 위해 *네트워크 효과를 잘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0대 때부터 벌써 플랫폼 전략을 이해하고 있었다. 1970년대, 아직 구글도 아마존도 페이스북도 없던 시절의 일이었다. 손정의의 아버지가 커피를 팔기 시작했지만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어린 손정의는 무료 커피 쿠폰을 뿌리자는 제안을 했다. 그렇게 고객층을 확보하고 구매력을 가진 뒤에, 커피콩을 좋은 조건으로 매입하고 다시 좋은 조건으로 커피를 파는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이후에도 소프트뱅크는 소프트웨어, 브로드밴드, 핸드폰 등 새로운 분야에 진입할 때마다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시장을 장악해왔다.
*이용자의 수가 늘어날수록 네트워크의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효과
일본은 아직 모바일 결제 시장이 만들어지지도, 1등 플레이어도 없다. 소프트뱅크는 처음부터 모바일 결제 시장의 압도적인 1위가 되기 위해 압도적인 마케팅 활동을 하고 있다. 이전부터 해왔던 네트워크 효과 공식을 다시 활용하는 것이다.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이용자가 확보되면 자연스럽게 가맹점도 더 빠르게 늘게 되고, 가맹점이 늘수록 이용자 편의도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일본에서 모바일 결제 시장이 생기고 나면 소프트뱅크는 압도적인 주인공이 되고 후발주자는 참여가 어려워진다. 게다가 일본 정부까지 모바일 결제 시장 키우는 정책을 가지고 있으니 순풍을 받을 수밖에 없다. Paypay 홈페이지에서는 3년 뒤에는 결제수수료가 유료로 될 수 있다는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 후발주자가 들어오기 힘들만큼 시장 지위를 획득하는데 3년이 걸린다고 소프트뱅크는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모바일 결제 시장이 성공적으로 성장한다면, 3년 뒤 Paypay는 소프트뱅크의 주요 캐시카우가 될 것이다. 결제 서비스에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는 큰 덤이다.
소프트뱅크에게 1000억 원은 사실 무리할 수준의 큰 금액도 아니다. 최근의 쿠팡을 포함해서 수 조 단위의 투자를 해왔던 소프트뱅크에게 1000억 원은 오히려 시장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싸다. 게다가 Paypay가 성공적으로 성장하게 되면, 야후재팬, paytm, 알리바바의 기업가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소프트뱅크 투자 포트폴리오의 전체 가치가 오르게 된다. 게다가 소프트뱅크 제국이 결제 솔루션을 확보하게 되면 알리바바, 쿠팡, 토코피디아, 스냅딜 등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전자상거래 서비스들에게도 당연히 긍정적인 요인이 된다.
소프트뱅크 손정의는 이전 일본에 최초로 초고속 인터넷 ADSL을 보급하려고 하여, 일본이 세계적인 트렌드에서 뒤처지는 것을 한 번 막은 적이 있다. 이번 시도로 일본의 뒤쳐진 결제 서비스를 혁신하여 세계적인 트렌드에 따라 갈 수 있을까? 일본이 한국보다 먼저 모바일 결제 시대로 돌입하게 된다면, 이번 시도가 그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