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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dy Jul 28. 2020

S3#90 우크라이나 포커 한 판

19.08.03(토) 예림이 그 패 봐봐

 '테디, 속 아프지? 내가 아침 해줄게' 

광란의 밤을 보내고 느지막이 일어났다. 발락은 일어나자마자 엄청난 요리실력을 보여주었다. 크레페라고 해야 하는 거진 모르겠지만, 어떤 반죽 위에 바나나 등을 올리고 초콜릿을 발라먹는다. 밥까지 차려주는 호스트 발릭은 천성이 그냥 착한 것 같았다. 그런 그의 음식을 평하는 건 정말 양심 없는 짓이지만, 한국인으로서 해장음식으로 크레페를 먹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우크라이나에서 흔하게 파는 중국 라면이 있는데, 빨간 맛은 나름 매콤하니 한국인들에게도 입에 맞는다. 몇 가지 라면이 있었지만, 같이 있을 때 꺼내기에는 다시 구하기가 힘들어 먹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집어넣고 크레페로 배를 채운다.

 '오늘 밤은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했어'

 발릭이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 모양이었다. 포커를 모여서 치기로 했다고 한다. 같이 먹을 저녁거리를 사고 맥주를 사러 가자고 밖으로 나온다. 먼저 온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 함께 걸어서 장을 보러 간다. 발릭의 집은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꼬박 10분이 조금 넘고, 키예프 동물원을 빙둘러싸고 뒤편에 놓여있다. 그래서 집에서는 동물원의 동물들이 보이는 신기한 풍경이다.

 주말답게 많은 인파가 모여있었는데, 정말 낡은 동물원에 아이 손을 잡고 온 우크라이나 가족들을 보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이렇게 해외를 다녀도 본능적으로 가지는 백인에 대한 환상이 있는 모양인데, 낡은 이 나라에 저 낡은 동물원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뭔가 묘하게 느껴졌다. 우크라이나는 겉으로는 아름답고 좋은 나라인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속을 들여다보면 많은 곳들이 곪아있다. 소비에트 시절의 영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러시아의 눈치를 보느라, 작금의 상황이 뭔가 한국 같아 정도 많이 간다.

 그런 동물원을 지나쳐 마트에 갔다. 각자 마실 맥주와 먹을거리를 사고, 나는 과일과 야채를 한가득 샀고 담기 위한 백팩도 이미 들고 나왔다. 단기 여행 시에는 카우치서핑을 가면서 간단한 선물을 준비해갈 수 있지만, 이런 장기여행에서는 그럴 수 없어, 보통 호스트의 집에 먹을거리를 가득 사놓는 걸로 대체한다. 이 부분은 다른 카우치 서퍼를 하는 한국분을 만나서도 공통으로 하는 이야기였다. 한국인들은 빚지고는 못 사는 것 같다.

 마트 앞 케밥 큰 것을 골라서 먹었다. 일하시는 분은, 고려인에서 조금 백인이 섞인 듯한 우즈벡이나 카자흐 분 같이 생기셨는데, 대부분의 노점상들은 이 쪽분들이 많으신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맥주를 마시며 포커를 쳐본다. 홀덤이라는 룰로 치는데, 얼마 전 프로게이머 임요환 씨의 프로 포커 전향을 계기로 한국에 많이 알려진 이 분야는 이 곳에서 도박보다는 스포츠로써 즐기는 것 같았다. 대여섯이 둘러앉아 정말 오랫동안 쳤고, 현금을 대신해 칩으로 베팅을 한다. 칩을 모두 잃으면 게임이 끝나고 1등이 나올 때까지 게임은 계속됐다. 

 '김치 베팅을 보여주지.. 훗' 

 하고 호기롭게 시작했던 베팅은 끝에서 두 번째로 파산했다. 어떤 친구의 여자 친구도 왔었는데 다들 그냥 게임으로써 즐긴다. 1등이 나와도 따로 상금이나 상품은 없다. 발릭의 친구들은 우크라이나 분들 치고도 영어를 다들 잘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자정 즈음돼서 자리가 파하고 나는 다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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