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모이면 그날 1차에서 처음 카드 꺼낸 사람이 몰아서 그날치를 모두 계산한 후, 회차별로 참석한 인원에 맞춰 n분의 1을 하여 지불할 금액을 알려준다. 1인 1메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매번 한상 거하게 시켜놓고 먹고 마시니까 적절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 중에는 맥주만 축내는 나도 있고, 한 잔 마시면 손도 못 대는 민혜 언니도 있고, 식이요법 하는 기간이라 절주하는 슬기도 있고, 소주를 궤짝으로 놓고 마시는 몇몇도 있고 아무튼 다양했다.
그리고 금주를 시작하고 보니 (미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정산 방식은 좀 띠용때용한 구석이 있다. 탄산조차 잘 마시지 않으니까 스텐레스 컵이나 소주잔에 물만 따라 마시고 있으니까 기분이 묘해지는 것이다. 마시지도 않은 술의 값을 같이 지불하고 있으니까 이건 자리값, 함께 즐겁게 마시고 논 값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오, 적은 금액은 아니네' 하는 생각이 같이 든다. 쫌생이가 된 것 같아서 속으로도 부끄럽고 민망하다. 그런데 집세니 카드값이니 공과금이니 적금이니 하는 게 줄줄이 빠져나간 뒤 만 원 단위 간신히 남아있는 주 사용 통장을 보면 또 어이쿠 하고 당황한다.
그러고 보면 그간 민혜 언니가 가장 힘들었겠다 싶다. 주로 모이는 곳이 서울 한강 이북, 그 중에서도 서쪽 동네(홍대, 합정, 상수 등지 말이다)이다 보니까 언니가 사는 곳에서는 왕복 3시간이 넘어간다. 그런데 술도 거의 손을 못 대는 체질인데 매번 같이 그 값을 지불하고 있었던 거다. 장소 선정할 때야 모이는 누구나 오가기 적당한 중간 지점을 찾아보자고 말을 꺼냈지만, 술값에 대해선 (같이 마시고 들이붓던 때의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 했다.
희한한 건, 이 모임은 그래도 정신줄 붙들고 카페에 가면 꼭 각자 계산을 한다. 이것도 재밌는 포인트. 다같이 술을 조금 멀리해볼 시기일까. 아니면 무조건 마실 술은 따로따로 시킨다? ...이래서 술 안 마시면 술 마시는 친구들이랑 놀기 힘들다고들 하나 보다. 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