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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Apr 23. 2019

사계리


재작년 섬에 갔을 때는 종달리에 머물렀다. 두 밤을 잔 렌탈하우스는 거실 한쪽이 온통 책장이고, 침실에도 2단으로 된 긴 책장이 있는 '북스테이' 였는데 제주 지역에 대한 책이 여럿 꽂혀있었다. 마지막 날 오전에 간 동네 카페에는 근처의 밥집이라든가 소품샵, 구멍가게, 게스트하우스 등 여러 스팟을 아기자기하게 소개한 맵이 있었다.

이번에 그와 유사한 것을 다시 본 곳은 사계리에서다.


중문에서 섬의 서쪽인 한림, 애월까지 가기로 마음 먹고 코스를 짠 것이 첫 끼니는 사계로 191에 위치한 일본 가정식 요리집 <소봉식당>, 그리고 식사 후 커피는 차로 겨우 3분 거리에 있는 그 <사계생활>이었다.  사계리 농협의 건물을 고쳐 만들었다더니 '아주 전형적이다'라고 표현하고 싶어지는 지방 소도시의 은행 건물 모양새, 분위기를 살린 곳이다. 음료와 디저트를 취급하는 '카페'가 주요 업인 듯 하지만 내부에는 관련 소품이나 책을 판매하는 매대도 있고, 전시 공간도 갖추고 있다.

메뉴를 주문하면 받은 것은 영수증만이 아니라 접수 번호와 대기인 수가 적힌 번호표다. 번호표에 적힌 '로컬여행자를 위한 콘텐츠 저장소' 라는 텍스트는 <사계생활>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콘셉트를 정의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아마도 금고가 있었을 자리에 소금으로 산을 쌓아 조명과 함께 만든 작품을 전시해놨다. 띵동-하는 호출벨이 울리면 번호표를 확인하고 은행 창구처럼 넘버링된 곳 중 '(2) 수령'에서 트레이를 받아가면 된다.

커피는 특별히 '지점장실'이라고 쓰인 공간에서 마셨다. 한 쪽 구석에 있는 오래된 캐비닛에는 각종 농협 업무 관련 서류 이름이 적혀있었다. 대충 받은 자금을 영농 목적으로만 사용하겠다는 각서라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근처 산방산을 닮은 모양의 '산방푸치노'의 마지막 거품 한 모금까지 다 털어마시고 한라봉 마멀레이드가 콕콕 박힌 '한라봉초코 휘낭시에'를 우물거린 후에는 지점장실 밖으로 나와 공간을 크게 한 바퀴 돌아봤다. 벽에는 <소봉식당>을 포함하여 사계리에 위치한 한의원이라든가 밥집, 카페, 숍을 소개한 맵이 걸려있고, 접수지를 적는 곳처럼 만들어둔 외딴 데스크에는 각각의 아기자기한 일러스트와 소개가 엽서처럼 놓여있다. 하나씩 챙겨가며 사계리를 만끽할 루트를 연상해볼 수도 있게.


이번에 섬에서 4.3평화기념관에서 제주의 근현대사를 알아보며, 제주는 지역공동체의 유대감과 결속력이 강한 곳이라고 이해했다. 그런 분위기와 마음이 마을 하나 하나를 의미 있고 빛깔 있는 단위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커뮤니티와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것들. 그렇게 하나씩 경험하고 젖어들다가 섬에 눌러앉게 되고 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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