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 Feb 02. 2019

그래서 국제관계학 (IR) 전공이라고요?

그 누구도 정확히는 이해하지 못하는 기묘한 전공 사용 설명서

대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이름이나 나이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아마도 "전공이 뭐예요?"가 아닐까 싶다. 그건 내가 다니고 있는 미국 대학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질문은 이제까지 내가 보아왔던 그 어떤 첫 만남 자리에서도 빠지지 않았으니까.


누군가 나한테 무슨 전공이냐고 물어보면 나는,

"아, 국제관계학 (International Relations) 전공이요."

라고 빠르게 넘어간다. 그게 무슨 전공인지는 잘 모르시겠지만 아무튼 그런 전공이 있습니다, 하는 식으로. 그러면 보통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아..."하고 별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대체 무슨 전공인지는 이해할 수 없으나, 일단 고개를 끄덕끄덕거리고 보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말이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보고는 한다,

그건 도대체 뭐하는 과에요?


그러면 나는 솔직한 마음으로는, "글쎄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하고 싶어 진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정말 그렇게 대답을 하고는 했었다. 웃자고 하는 소리 같았겠지만 슬프게도 사실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 역시 이 과가 도통 무엇을 하는 과인지 알기 힘들었으니까.


그런데 솔직히는 지금도 아주 정확히 안다고는 말을 못 하겠다. 하지만 이제는 일 년 넘게 그 전공에 몸담고 있는 명색에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닐 수는 없는 관계로, 요즘은 그나마 좀 더 그럴싸한 대답을 내놓는다:

"정치 비슷한 과에요. 정치과 건물에 속해 있어요."

그러면 몇몇 사람들은 내게 정치인이 될 생각이 있는 거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나는,

"그건 잘 모르겠고... 보통은 국제기구도 갈 수 있고, 로스쿨도 갈 수 있고, 뭐 아무튼 그래요, " 하고 얼버무린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나도 속으로는 늘, 아 그런데 나 진짜 졸업하고 뭐해 먹지, 하고 고민하기 일쑤다. 당장 내일 벌어질 앞길도 알기 힘든 삶인데, 십 년 뒤쯤에 내가 이 전공으로 뭘 하고 살지를 도대체 내가 어떻게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이과 전공들의 미래가 밝다는 요즘, '문과' 과목을 전공하고 있다는 데에 대한 부담감도 없지 않아 있다. 문과 전공은 국내에서도 취업이 어려워져 '문송합니다'를 달고 다니고는 한다는데, 아무렴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미국에서는 어떨까. 그것도 많은 해외 유명 경제 경영과처럼 졸업 이후 취업길이 곧바로 열려 있지도 않다면 말이다. (물론 경제 경영과들은 그 나름대로 내가 모르는 고충이 있기는 할 거다.) 그래서인지 가뜩이나 유학생들의 취업이 어려워지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당당하게 문과 과목을 전공하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취업을 버린(?) 용기 있는 행동'으로 비치는 것도 같다.



그래서 많은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관련 전공이 인기다. 그 인기는 취업비자, 영주권, 그리고 유학생들이 취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인 CPT나 OPT (유학생이 사용할 수 있는 취업 제도들. 이에 대한 설명은 이후 글들에서 자세히 다룹니다)에 대해 포털 사이트에 한 번만 검색을 해 보더라도 실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STEM 전공 졸업생이 문과 과목 졸업생에 비해 받는 이런저런 취업 관련 혜택을 무시하기는 힘들다. 대표적인 예로, 일반적으로 유학생이 졸업 이후 취업할 자리를 구할 수 있는 OPT 기간이 최대 12개월인 반면, 이공계 전공 졸업생 학생들은 그 기간이 최대 3년까지(!) 보장된다.


그래도 이와 같이 이공계 전공에 비해서는 다소 아리송해 보이는 내 전공의 향후 미래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은 고마운 편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도대체 그 전공으로 뭘 해 먹고살 수 있겠냐'는 회의감을 내게 내비치는 이들보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나는 명절날에 가족들끼리 모였을 때에, 내가 국제관계학을 전공한다고 했을 때에 들었던 반응 중 하나를 아직도 기억한다:

"국제관계학은 무슨, 개나 소나 '국제' 이름 붙이는 거지."

기껏 공부를 열심히 해서 들어간 전공에 대해 그런 말을 듣게 되는 게 내심 속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역시 국제관계학 전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 유래되는 반응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까지 나는 그 오해와 편견을 푸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국제관계학에 대한 권위가 있는 사람도 아니거니와, 몇 년간 학문을 공부한 석박사도 아니다. 이제 겨우 전공에 들어온 n년차 학부 유학생이다. 나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난 이후로, 아니 내 남은 대학 생활 동안에도 어떤 미래가 펼쳐져 있을지 여전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다른 전공이 아닌 내 전공을 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적어도 그 누구도 정확히는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이 기묘한 전공에 대해 해 줄 대답이 이전보다는 조금이나마 생겼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나는 '대체 그게 뭐하는 전공이야?'라는 질문에 대한 조금은 더 길고 애정 섞인 대답을 앞으로 써 내려가고자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