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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Feb 06. 2019

<SKY 캐슬>: 해피가 아닌 그저 헤픈 엔딩 (1)

이런 결말이나 보자고 일주일을 기다렸다니

*드라마 내용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글입니다.


나는 <SKY 캐슬> 마지막 회가 방영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 결말에 대한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대한민국 교육 제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실적인 드라마인 만큼 비극적으로 끝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그렇더라도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려줄 만한 결말이었다면, 그 나름대로 만족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SKY 캐슬> 20회를 본 내 반응이란 '읭?'에 가까웠다.


처음에 나는 드라마를 잘못 본 줄 알았다. 그 방송분이 정말 그대로 방송이 되었다는 게 믿기지를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게 정말 방송 내용이었다는 걸 깨닫고 나서부터는, '에이, 설마, 계속 보다 보면 뒤에 뭔가 더 있겠지, ' 하면서 현실을 부정하려고 들었다. 그런데 정말 그게 끝이었다. 그나마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자면, 정말 해피해피하고 이상주의적인 그 결말 그대로......


아니,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정말 아니다. 나는 이런 엔딩을 보자고 일주일이나 기다린 게 아니란 말이다.




해피엔딩 이전에, 미완성 엔딩


우선 한 가지는 확실히 해 두자. 나는 이 드라마가 해피엔딩이라서 싫었던 게 아니다. 나는 (하단 링크에 첨부된) 지난번 리뷰에서만 해도 예서네 가족을 비롯한 사람들의 행복을 빌었던 사람들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회에서 행복한 예서의 모습을 보는 것도, 이제껏 보지 못한 차파국교수님의 귀여운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그래, 인정한다. 그런 분위기도 좋기는 했단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즐겁고 행복한 분위기는 19회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적어도 마지막 회였던 20회에서는 이 드라마가 여지를 두고 열어놓은 질문들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을 내려줄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이른바 작품 내의 '떡밥 회수'를 할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다.


내가 결말에 대해 특히나 의아했던 건 누가, 왜, 어떻게 혜나를 죽였는지와 같은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서는 별달리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끝나 버렸다는 거다. 김주영 선생이 혜나를 죽였다고는 하는데, 그마저도 본인이 혜나를 죽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니까 그렇게 추론할 뿐인 거다. 드라마 속 내용을 보고 확신할 수 있는 건 김주영 선생이 혜나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만남이 살인의 동기가 될 수도 있었겠다는 점뿐이다.



작중 내용으로 추론해 보자면 스카이캐슬 내의 경비가 선생으로부터 사주를 받아 혜나를 죽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마저도 꽤나 불충분한 설명이다. 김주영 선생이 어떻게 경비와 접촉해서 그를 사주할 수 있었던 건지, 그리고 어떻게 형사들을 속일 수 있을 정도로 교묘하게 우주한테 죄를 덮어 씌울 수 있었던 건지까지는 여전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작중 형사가 우주가 아닌 다른 사람이 혜나를 살해했을 경우 7가지 조건이나 성립을 해야 한다고 말을 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우주가 풀려나기 힘든 그런 많은 조건을 언급할 때는 언제고, 작품 후반부에서 김주영 선생은 경찰 조사를 받더니, 범행을 저지른 방법과 그것이 밝혀지게 된 과정에 대한 별 다른 언급 없이 그대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니 나는 이 드라마의 그런 결말이 새드 엔딩이고 해피 엔딩이고 하기 이전에, 미완성 결말에 가까웠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누가, 왜, 어떻게 혜나를 죽였는지와 같은 질문들은 여전히 제대로 대답이 되지 않은 채로 끝이 나버렸으니까.



사랑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저번 리뷰에서 나는 이 드라마 속에서 '사랑'이라는 말이 남용되고 있는 아이러니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작가가 이 사랑한다는 말의 남용을 의식하고 풍자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마지막 회를 보고 나서는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후반부에는 도리어 작가 본인이 모든 결말의 개연성을 사랑의 힘에 맡기고 있는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SKY 캐슬>에서 사람들이 많이 비판하는 내용 중 하나가 바로 박수창이라는 인물에 대함이다. 가정폭력범이나 다름없는 아버지가 작중에서 너무나 쉽게 용서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그가 제아무리 나중에 가서 반성을 한다고 한들, 영재네 가슴에 든 피멍까지 그렇게 쉽게 지워지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어찌 되었든 박수창이 갈 길을 잃은 듯한 영재에게 유일한 가족이나 다름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 부자는 남들은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 큰 가족의 비극을 같이 공유하고 있다. 그러니 김주영 선생의 말대로 박수창이 이제부터라도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 더 좋은 결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차교수에 대한 얘기는 그렇게 쉽사리 설명이 되지 않는다.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도 물리적인 폭력을 (거의) 행사하지 않는다뿐, 가족들에게 엄연히 언어적 폭력을 비롯한 가정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오죽하면 그의 딸은 아버지의 압박을 못 이겨 하버드를 다니고 있다는 사기극을 무려 1년 동안이나 벌였고, 세상 순해 보이는 그의 아들도 사실은 아버지가 없는 게 더 행복하다는 말을 그의 면전에다가 대고 한다.


그쯤 되면 차교수도 반성을 할 법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 문제는 그가 그렇게 쉽게 깨달음을 얻고 생각을 바꿀 인물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그는 가족들에 의해 집 밖으로 내쫓겨 났을 때에도 깨달음을 얻기 이전에, '어디서 가장을 이렇게 취급하느냐'며 분노하기에 바빴던 인물이다. 자기 아들이 피라미드를 깨부쉈을 때에도, 자신의 마음가짐을 바꾼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큰 피라미드(!!)로 자기 주관을 더 확고히 했다. 그러니까 그의 딸 세리의 말대로, 그는 '찬 바람 좀 쐰다고 해서' 쉽게 정신을 차릴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거다.


승혜 씨가 그런 그를 상대로 둔 게 초강력 수이기는 했다. 그리고 그런 승혜 씨의 충격요법이 조금은 통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가 인사불성이 되어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사과문까지 그의 아내에게 보낸 걸 보면 말이다. (그 와중에도 맞춤법을 안 틀렸다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캐릭터는 여전하지만.) 하지만 그런 그가 일시적으로 변할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얼마나 장기적으로 변화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며칠만 지나도 또 "가장을 어떻게 이렇게 대할 수 있냐"며 노발대발하거나 "더는 못 참겠어, 아무리 그래도 고3인 애들을!"이라고 하면서 버럭 소리를 지르기나 하게 될 거라는 보다 현실적인 결말 아니었을까.


물론 누군가는 이게 현실 속 얘기가 아닌 드라마에 불과하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팍팍한 현실이 아닌 드라마 속에서라도 사랑의 힘으로 변화하는 인물을 보고 싶다고. 그래, 맞는 말이다. 나 역시도 차교수가 사랑의 힘으로 변화할 수만 있다면은 참 좋겠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 말도 안 되는 결말에서 건질 만한 그나마 좋은 장면들 중 하나가 차교수 부부의 화해이기도 했다고도 생각한다. 사랑의 힘은 현실에서나 드라마에서나 분명 위대하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 드라마에서든 현실에서든 - 사랑이 인생 만병 통치약이 될 수 있지도 않고,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정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도, 가장을 존중할 줄 모른다며 호통치는 권위주의적인 남편도 다 덮어두고 '사랑하면 되겠지'라고 말하는 미디어의 폐해를 조금만 생각해 보더라도 그렇다. 그런 헛된 믿음으로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를 생각해 보면, 나는 차교수 부부의 화해를 조금은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다.


불과 몇 회 전만 해도 노승혜 씨는 작중에서 이런 '반성문'을 썼더랬다:

연장은 고쳐쓸 수 있지만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을 무시하고
차민혁 씨에게 끝까지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못했던 저 자신을 통렬히 반성합니다.


나 역시도 승혜 씨의 말을 빌려 말한다. 연장은 고쳐쓸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게 아니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할 것 같으면, 진작에 변했어야 맞다. 드라마의 개연성을 생각해 보더라도 차교수의 지나치리만큼 갑작스러운 변화는 말이 되지 않는다. 이게 이 드라마가 차라리 비현실적인 20회가 아닌, 19회 정도로 끝났어야 했던 이유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외의 수많은 이유들을 다루기에는 이미 분량이 한참 길어져 버렸으니, 그다음 편에서 우주의 갑작스러운 자퇴라던가 '죽은 시인의 사회 패러디'를 비롯한 이 드라마의 결말이 지닌 더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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