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 Feb 08. 2019

<SKY 캐슬>: 해피가 아닌 그저 헤픈 엔딩 (2)

결말의 아쉬운 개연성에 대하여

 *드라마 내용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글입니다.


나는 <SKY 캐슬>을 지켜보던 애청자로서 그 결말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결말이 어떻게 혜나의 죽음과 같은 중요한 떡밥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는지, 차교수의 문제를 너무 가볍게 넘겨 버렸는지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저번 리뷰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결말에서의 몇 가지 아쉬웠던 점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만 하더라도 다수의 시청자들은 그렇게 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리뷰에서는 화두로 떠오르는 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바로 개연성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문제 삼는 결말의 이런저런 문제들은 사실 갈 곳 잃은 개연성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드라마의 20회만 전체 전개에서 똑 떨어져 나온 것처럼 19회까지 펼쳐진 작중 내용과 잘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개연성의 문제는 이제까지의 작중 행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들에서 두드러진다.


진진희네 가족은 그나마 이 캐슬 내에서 제일 평온한(?) 가정이었고, 이태임네는 원래 비현실적이다 못해 우주로 가 버린듯한 집안이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렇지만 저번 리뷰에서 언급했듯이 차교수가 하루아침에 사랑스러운 남편이자 아빠로 변해 버렸다는 얘기부터는 개연성의 문제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예서네가 달라졌어요


그런데 차교수의 이런 갑작스러운 캐릭터 변화는 예서네 가족에 비하면 그나마 애교다. 예서네 집에서는 사람들이 쉽게 하루아침에 전부 개과천선을 해버리니 말이다.


그나마 예서 아버지의 성장 이야기(?)에는 납득할 수라도 있다. 자기 딸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죽였다는 일이 강준상에게는 큰 영향을 끼친 일이기도 했으니까. 또 예서의 변화도 갑작스럽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 역시도 우주를 향한 마음을 깨달으면서부터 조금씩 달라지고는 있었다. 그리고 예서는 중년의 어른이 아니라 아직 십 대의 청소년이니, 가치관이 이미 고착화된 4, 50대 어른들보다는 훨씬 빠르게 변화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곽미향은? 그는 이미 그렇게 마음을 쉽게 고쳐 먹을 수 있는 나이를 한참 지났다. 더군다나 그가 강준상처럼 성격이 크게 변화할 만한 계기가 있었는지도 조금은 애매하다. 물론 남편 강준상의 변화라던가 무고한 우주를 석방시키기 위해 시험지 유출 사건을 자백했어야 했다던가 하는 큰 사건들을 겪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김주영 선생이 지적한 대로) 예서의 상태가 악화되지 않았더라면 끝끝내 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곽미향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서에만, 아니, 더 정확히는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인물이었다. (이걸 딸에 대한 사랑이라고도 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하단 링크에 첨부된 리뷰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그런데 이런 욕심 많은 인물이 20회에서는 갑자기 착해져 버렸다.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예서한테 뭘 그렇게 열심히 하냐며 여유를 가지라고 말한다. 이제까지 자기 이름을 속이면서 거의 한평생을 살아와 놓고서는 갑자기 자신이 그토록 부끄럽게 여겼던 자기 부모님에게 다시 연락을 한다. 그리고 사실 그보다도 놀라운 건, 강준상에게 혜나를 찾아가야 하지 않겠냐는 얘기를 먼저 꺼낸다는 것이다.... 아니, 대체 왜?


어쩌면 그게 혜나의 죽음에 대해 이제야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양심적인 보통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건 그가 그런 '양심적인 보통 사람'의 범주는 좀 한참 벗어난다는 걸 간과하는 소리다.


이 드라마에서 김주영 선생에 가려져서 그렇지, 곽미향도 꽤나 상식을 뛰어넘는 인물이다. 이쯤에서 잊고 있었을 만한 그의 행적을 정리해 보자. 곽미향은 십 년도 한참 넘는 세월 동안 자기 이름을 비롯한 자기 과거를 속여 왔었다. 예서 아빠를 첫사랑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해서도 이간질과 거짓말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의사 부인의 자리를 쟁취하고 나서는 3대째 의사 가문의 업을 달성하기 위해 예서의 교육에 온 힘을 다 쏟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그녀의 생에 갑자기 혜나라는 불청객이 불쑥 들어온 것이었다.



예서 엄마의 입장에서는 혜나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서 엄마가 보인 작중 행적은 정말이지 보통 사람의 경지를 넘어선다. 자기 딸 또래의 아이를 구박하고, 협박하고, 그 부모에 대해 심한 말을 하는 것도 모자라서... 혜나가 죽고 나서 그 방에 남은 유품들을 전부 없애 버리는 악행을 저지른다. 그것도 혜나의 휴대폰이랑 노트북을 때려 부숴놓고, 쓰레기차를 쫓아가서 전부 버려버리는 등 아주 잔인하게 증거인멸을 해 버린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 어떠한 죄책감도 느낄 수 없는 듯한 곽미향의 표정은 정이 떨어지다 못해 소름이 끼치게까지 느껴진다. (그렇게 증거인멸을 해놓고도 아무런 결과도 없이 넘어간다는 점도 이 드라마 결말이 개인적으로 아쉬운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그런 곽미향이 혜나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빌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거기다가 갑자기 자신이 그토록 숨겨왔던 과거를 이제야 마주한다? 이건 거의 곽미향이 다시 태어나다시피 해야 가능할까 말까 해 보인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변화에 이어서, 집안에 3대째 의사 가문을 만들겠다는 소원을 한평생 가지고 계시는 듯했던 예서네 할머니마저도 갑자기 그 마음을 바꾸시는 듯하니... 나는 이제껏 내가 같은 드라마를 보고 있던 게 맞나 의심스러워질 지경이다.


학생들의 반란, 이건 실화인가요?


하지만 SKY 캐슬 부모들만큼이나 그 아이들의 행동도 그 못지않게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가장 논란이 많았던 이 장면을 살펴보자. 학생들은 SKY에 못 가면 사람도 아니라고 폭언을 하는 선생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기에 이른다.


20회를 본 사람이라면 다 기억할만한 장면일 테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 영상에 달린 댓글들에서는 아이들이 책상 위로 올라가서 한 명씩 노래라도 불러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이쯤 되면 <SKY 캐슬>이 뮤지컬이나 영화로 장르를 바꾼 것도 같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잘못 옮겨온 듯한(?) 이 장면이 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인지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나 있을까 싶다.


누군가는 "현실도 아닌 드라마에서 왜 현실성을 따지느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SKY 캐슬>은 실화도 아니고,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그저 허구의 창작물일 뿐이라고.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정교하게 현실을 닮아 있어야 하는 거라고. 


현실에서는 막장 드라마에서보다도 더 말이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더라도, 실화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런데 창작물에서는 다르다. 실화가 아닌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감정적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갑자기 사람이 하루아침에 벼락을 맞은 것처럼 착해진다던가,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 느닷없이 반동을 일으킨다던가 하는 일들을 사람들이 현실처럼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만한 개연성과 인과관계가 필요로 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에이, 말도 안 돼' 하고 작품에서 돌아서 버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 역시 같이 흐려져 버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창작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하는 걸지도 모른다. 단순히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는 것보다도 한참 더한 노력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데 반대로 이제까지 <SKY 캐슬>이 흥행을 하게 된 것 역시 드라마의 작가님이 결말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힘든 역할을 잘 해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학력고사 시대와는 다른 '학종' 시대에서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애쓰는 부모들의 모습을 현실보다도 더 현실적으로 그려냈었다. 그런 교육 현실 속에서 아이들을 비극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으려는 김주영 선생에 놀아나는 부모의 모습도 억지가 아닌 당위성이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진 건 그런 현실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엄청난 현실 묘사의 잠재력을 보여준 드라마였던 만큼 이 작품이 보여준 결말이 유독 더 아쉽게 느껴진 것도 같다. '이태임'식 동화 같은 결말은 교육 현실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빛이 바래버렸으니까. <스카이 캐슬>이 현실에 제기한 날카로운 비판들마저 무력하게 만들어 버린 듯한 결말이 너무나도 아쉽다.

매거진의 이전글 <SKY 캐슬>: 해피가 아닌 그저 헤픈 엔딩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