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이번 주에 크리스마스마켓에 대한 글을 올리려고 했는데 나라 시국이 이렇다 보니 그럴 기분이 나지 않았다. 부쩍 뉴스를 보는 시간이 훨씬 늘어났고 당연히 논문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계엄령이라니. 당시 나는 도서관에 있었고 우연히 한국 단톡방 소식으로 알게 됐었다. 아직 계엄령이 해지되기 전 시점부터 뉴스를 접했고, 긴박한 상황을 유튜브 라이브로 지켜보며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그 뒤에도 하루하루 유튜브로 뉴스를 확인하며 까도까도 양파처럼 계속 나오는 충격적인 이야기들에 요즘 안그래도 높은 스트레스 지수가 최고치를 찍었다.
주변에서 외국인 친구들이 어떻게 된 일이냐 물어볼 때면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지금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맞나, 교수님한테 말하면 마감 연장을 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해봤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내게 남은 시간은 이제 2주 정도. 일해야 하는 날들을 빼면 일주일 조금 넘는 시간이다.
전에는 그래도 집에서 논문 작업이 잘 됐는데 요즘은 집에서도 집중이 안되기 시작했다. 뉴스 보다가 스트레스 받아서 잊으려고 예능 보다가 또 걱정이 되어 뉴스를 보다가 무한 반복이었다. 물론 그것을 핑계로 변명을 삼으려는 건 아니다. 지난달까지 월 12GB 모바일 데이터로 살아야 해서 인터넷을 많이 못했는데 이번달부터 40GB로 늘어서 갑자기 도파민이 터진 것도 있다. 집에 인터넷이 있던 시절에도 많이 미루긴 해도 과제를 잘해오긴 했지만… 논문 스트레스가 확실히 과제보다 더 커서인지 이번에 자꾸 회피하듯 유튜브로 도망치게 되고 생각보다 잘 안된다. 이번주가 피크였다. 무섭고, 불안해졌다.
일단 요즘 날씨도 우중충하고 집에만 있다 보니 자꾸 축축 쳐지는 느낌이라 자주 가는 카페로 갔다. 무료 와이파이가 제공되는 곳이라 여기서도 비슷할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분위기 전환을 위해 왔다. 그런데 와이파이가 안 된다. 이 카페는 전에도 가끔 이런 적이 있었고, 그때는 이게 큰 불편이었는데 오늘은 오히려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편히 앉아있으면서 무제한 인터넷 접근에서 해방될 수 있는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와이파이가 제공 안 되는 카페들도 있지만 그런 곳은 대부분 영업시간도 일러서 내가 지금 온 시간처럼 오후 5시면 다 닫았거나 닫기 한 시간 전이라 갈 수가 없다. 가끔 오락가락하는 이곳의 와이파이가 이번엔 오히려 반가웠다. 집 외에도 내가 편하게 가서 앉아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는 꽤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금 한다. 함부르크에도 늦게 활동하는 사람들을 위해 늦게 열고 늦게 닫는 카페도 생기면 좋겠다. (한국처럼 24시간은 바라지도 않는다..ㅎㅎ)
무작정 논문을 쓰기 전에 일단 내 마음을 적어 내려 가면서 마음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목, 금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면 힘들어서 토요일엔 녹초가 되어 하루 종일 거의 자거나 유튜브를 봤다. 그런데 이게 기분 좋은 휴식이 아니라 ‘논문 써야 하는데 버티며’ 쉰 거라 쉬어도 개운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에너지가 없어서 하루 종일 집에서 앉아있느라 온몸이 뻑적지근했다. 그 분위기가 오늘도 이어졌다. 그래도 좀 바꿔보려고 나가서 뛰고 오고 샤워도 했다. 그리고 카페에 온 것도 그런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어서였다.
사실 오자마자 습관처럼 유튜브 하나를 또 보려고 했는데 인터넷이 안되니 오히려 좋았다. 앞으로도 내 의지로 인터넷 사용을 얼마나 조절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이렇게 환경을 조절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일까지 안 나갈 정도는 아니니 중독까지는 아닌 것 같지만, 이렇게 혼자 일정을 감당해야 해야 하는 일이 생길 때가 문제인 것 같다.
지금까지 괜찮다, 괜찮다 해왔는데 사실은 괜찮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말을 계속 반복했던 것 같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두렵고 불안하다. 그래서 자꾸 마음을 달래 본다. 그래, 점수는 모르겠고 졸업만 목표로 하자. 건축법 시험을 볼 때처럼. 그냥 완벽하지 않게 하자. 대충 하자.
위 문장을 쓰다가 갑자기 궁금증이 들었다.
완벽하다의 반대말은 뭘까?
조금 검색을 해봤다.
내가 고른 말은 ‘대충 하다’였지만 또 다른 표현도 있을지 궁금해졌다.
검색 결과 창을 주르륵 훑어본다. 지식인 카테고리 가장 맨 위에 뜬 답이 ‘결함이 있다’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지금 내 상황에 적합한 단어는 아닌 것 같다. 어차피 완벽한 건 있을 수 없고, 모든 건 결함이 있는 거니까. 그리고 ‘결함 있게 하자!’는 좀 이상하잖아?
그 아래에는 ‘부족하다’라는 말이 있었다. 부족하다는 완벽보다는 ‘충분하다’의 반대말 같다. 더 내려가니 블로그 미리 보기에 '김이나 작사가님이 완벽의 반대말은 미완이 아니라 편안함이라고 했다’는 문장이 보였다. 그래, 이거다 싶었다.
편안하게 하자.
대충 하자.
이 두 개가 지금 내게 필요한 마인드인 것 같다.
일을 미루는 원인들을 설명해 주는 유튜브를 이것저것 보다가 든 결론은 내 안의 '완벽주의' 때문이었다. 그리고 '인정 욕구'. 심지어 남한테 받는 인정 플러스 자기 자신의 인정까지 중요한 사람은 더 시작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당연히 기왕이면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것도 있지만, 나는 예전부터 타인은 좋다고 평가해도 내 마음에 안 들면 만족하지 못하는 성향이 있긴 했다. 스스로에 대한 기준만 높고, 몸은 거기에 따라가기 힘들어 허우적대는 그림이다. 조금만 방심하면 머리 회로가 완벽주의+인정받아야 한다는 욕구를 타고 흘러가면 스트레스를 어마어마하게 받는 것 같다. 오늘 카페 가서 좀 머리를 식히고 났더니 좀 괜찮아진 것 같다. 귀여운 조카 사진을 가져다가 아이패드로 끄적끄적 적어서 핸드폰 바탕화면으로도 저장했다. 또 잊어버릴까 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편안하게 하자.
대충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