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도 나를 안 좋아할거야
논문과의 씨름이 끝나고 나니 이제 다음 상대는 취직.
한국에서 모국어로 준비할 때도 어려웠던 취직을 먼 이국땅에서 하려니 부담 백배, 아니 천배다.
독일에서는 거주허가를 얻으려면 일단 무조건 최저생활비를 감당할 능력이 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려면 목돈을 한 번에 증명하거나 아니면 고정적인 월수익을 증명해야 한다. 증명도 증명이지만 누구보다 그 생활비가 필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이제 학생 신분을 벗어났으니 365일 원하는 만큼 일을 할 수 있다. 그렇게 최근 한두달은 크고 작은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면접 기회가 찾아왔다. 일단은 전화 인터뷰부터 본다고 했다.
독일어에 아직 자신이 없으면서도 나는 꾸준히 독일어를 요구하는 직무에 이력서를 집어넣고 있는지라 면접도 독일어로 보아야 한다. 내 독일어에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을 독일어로 일하는 것을 피해왔던 학생 때의 시간들을 후회하고 내린 결정이다. 뭐, 그래도 내 독일어가 안먹힌다면 독일어를 안써도 되는 곳으로 가야겠지만, 도전도 안해보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지원한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 상품과 서비스를 파악하고 예상 면접 질문에 맞춰 답변을 준비한다. 내가 지원한 회사의 경우에는 독일어 뿐만 아니라 영어 능력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라서 영어로도 답변을 준비해야 하는 듯 했다. 하나의 외국어만으로도 어려운데 두 가지 언어로 모두 준비해야 하다니! 이제 한국어로는 면접 잘 볼 것 같은데...(!) 한국어로 면접 보던 시절이 그리울 정도다.
며칠 전까지는 이 외국어로 면접 봐야 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오히려 면접 준비를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렇다. 이런 스트레스의 해결법은 무조건 실행이다. 작은 거라도 좋으니 일단 실행을 해야한다. 1분도 안되서 지나갈 자기소개만 며칠 째 뜯어 고쳤다. 아직 스크립트 외우는 연습을 시작도 못했다.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마인드셋이다. 얼마 전에 리섭이라는 유튜버가 나는 솔로 리뷰를 하는 영상을 보다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어떤 출연자가 두 번의 데이트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 걸 두고 나온 이야기였다. 첫번째 데이트에서는 너무 조용하고 말주변도 없어보였는데 두번째 데이트에서는 내가 봐도 매력이 보일 정도로 말을 잘하고 태도도 바꼈다. 여기에 대한 리섭 유튜버의 의견은 이랬다. 두번의 데이트 모두 다대일 데이트라서 경쟁자인 남자가 데이트 자리에 함께 있었다. 첫번째 데이트에서는 경쟁자가 내가 판단하기에도 너무 우월한 사람이라 느껴져서 나 스스로 주눅이 들고 더 뚝딱거리거나 본래의 매력을 발휘하고 싶어도 몸도 입도 뜻대로 움직이지가 않은 케이스. 그런데 두번째 데이트에서는 경쟁자가 나와 비등비등하거나 내가 좀 더 낫다는 인상을 받게 되어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자신감 있게 태도가 바뀌고 매력을 발산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매력을 뜻대로 드러내지 못할 때 저 마음 깊은 곳에 깔린 내면의 목소리는 바로 이거라는 거다.
"나라도 나를 안 좋아할 거야."
이 유튜버의 영상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떤 사람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이 부분 만큼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면 내가 딱 저랬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 나는 누군가를 짝사랑하면서 정확하게 저 문장을 내 자신에게 수도 없이 되뇌었었다. 그 때의 나는 그 때의 내가 보기에 너무 못났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이제 나는 내가 아깝다는 마음이 든다. 내가 뭐 크게 외모적으로나 능력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저 자존감을 회복한 것이다. 그럼 그렇게 바뀌고 덜 뚝딱거리게 되었으니 짝사랑 하던 사람과 잘 되었느냐고? 그건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지지부진하던 짝사랑에서 드디어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많이 소중해졌으니까.
그런데 면접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만큼이나 떨리는 게 면접이다. 그것도 면접은 나를 대놓고 평가한다. 물론 지금의 나는 회사와 지원자의 궁합을 맞추는 거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준이 높은 회사와의 면접에 평가 드는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아니, 그게 팩트다. 처음에 그래서 기가 죽었던 것 같다. 면접 준비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면접 중 너무 긴장해서 말을 버벅이다 실수를 연발하는 내 모습이 머릿 속에 상상이 되어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한마디로 나는 주눅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나보다 너무 잘나 보이던 그 사람을 짝사랑하던 그 때처럼.
나는 솔로 리뷰 영상을 보다가 면접 마인드셋에 영감을 받을 줄은 나도 몰랐지만, 어쨌든 이건 내게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내가 주눅이 들어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무조건 이 잘나가는 회사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 여기에 맞춰서 나를 한껏 부풀려야 한다'는 강박에서 풀려났다. 회사를 아는 것 만큼, 나는 나도 잘 알아야 했다. 그리고 질문했다.
나라도 나를 뽑을까?
이런 질문을 손에 쥐고 내 이력과 장점들을 훑어보다보니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이런 저런 부족한 점은 아직 있지만 요런 저런 장점들이 보였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어느 정도의 성장치는 늘 보여왔다. 아주 최고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곳에서 일하든 무엇이라도 배웠다. 그게 언어가 되었든, 그 분야의 지식이 되었든, 어떤 스킬이 되었든, 그것을 열심히 익혔고 써먹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의 나를 덜덜 떨게 했던 나의 조금 부족한 부분도 스스로 큰 약점으로 보이지 않았다. 모르면 배우면 된다. 노력해보고 안되면 다른 일을 찾으면 된다. 무엇보다도 회사가 나를 신중히 알아보고 뽑으려는 의도도 있겠으나 나 또한 이 회사가 스트레에 매우 취약하고 예민한 나를 던져넣어도 되는 회사인지 서로 합을 맞춰봐야 하는 것이다.
결국은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자리 잡은 '판단하는 마음', '비교하는 마음'을 없애야 한다. 내가 더 잘났고 못났고 누구도 물어보지 않는데 스스로 나와 누군가를 비교하는 이 못된 잣대는 언제쯤 사라질까. 이제는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최종 결과가 나는 그 날까지 내 자신에게 말해줘야겠다.
나라도 나를 뽑을 거야.
*이 글에 첨부된 이미지는 ChatGPT를 통해 생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