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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머릿속의 키보드

그동안 글을 쓰지 않은 나를 원망이라도 하는 것 같다

by 노이의 유럽일기

아주 오랜만에 글을 발행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났다. 하지만 정작 글을 쓰려하니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했다. 과거에 내가 쓴 블로그를 보다가 '그땐 어떻게 이렇게 썼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쓰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자꾸 쌓여만 간다. 이 말을 지난 글에서도 한 것 같은데, 그러는 사이 목구멍에 걸려있는 이야기는 더 늘었다. 목구멍 안쪽이 답답해졌다. 오늘은 풀어내고 말리라. 하얀 화면을 열었는데 순식간에 기분이 바닥에 내팽개쳐지듯이 뒹굴었다. 글태기를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예전에는 머릿속에 타자기가 있었다. 쓰고 싶은 내용이 생기면 머릿속에서 타자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말 키보드를 두드려 적어내듯이 머릿속에서 글을 썼다. 그럼 그것이 사라질세라 노트북을 열고 정말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렇게 써 내려간 글을 별 고민 없이 곧장 인터넷에 올리고는 했다. 하지만 요즘은 공개적인 곳에 글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글을 쓰면 가슴이 답답한 기분이 든다. 개인적인 일기장이나 메모앱에 적는 것 정도는 괜찮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적을 수 있는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 안에 오래 품어온 완벽주의가 이유인 걸까. 단 한 편의 에세이를 쓰는 일이 너무나 무거워서 아예 들기를 포기해 버린 날이 여러 번. 논문을 써서, 일이 바빠서, 면접을 보느라. 다양한 이유로 글 쓰는 일을 계속 미뤄왔다. 아니, 그게 현실이었다. 미룬 게 아니다. 글 쓰는 시간은 만들지 못했을지언정, 내 삶에 소홀한 적은 없었다. 어쩌면 너무 다 잘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제는 정보성 글을 워드프레스 블로그에 몇 가지 끄적였다. 내 마음에 전혀 차지 않지만, 정보성 글은 정보만 담아도 충분하니까 그대로 발행을 한다. 더 다듬고 더 잘 쓸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한 상태로도 만족하는 것. 그것이 완벽주의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극단적이다. 아예 완벽하기를 바라거나 아니면 아예 엉성해져 버리고 마는 것 같다. 완벽주의가 팽팽 돌아가던 시기에 썼던 글이라고 해서 또 그렇게 완벽한 것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우습다. 도대체 너무 지나치지도 너무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글을 쓸 수 있기나 한 걸까.


이런 마음을 쏟아내고 있자니 마음이 울컥해 온다. 왜일까. 마치 내 자아 어느 깊은 곳에 살고 있는 글 쓰는 이가 그동안 글을 쓰지 않은 나를 원망이라도 하는 것 같다. 왜 이렇게 자기를 오래 내버려 두었냐고. 왜 이렇게 오랫동안 자기를 찾지 않았냐고. 아니다. 어쩌면 그 반대인 것도 같다. 아무리 마음속을 뒤져보아도 글 쓰는 이가 나타나지 않았었다. 나는 몇 번이고 찾아갔는데, 거기엔 그 이가 없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다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단순하게.

내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도 단순하게.

잘 살고 싶다는 마음도, 돈을 더 벌고 싶다는 마음도,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도, 다 내려놓고.

그냥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살고 싶다고.




휴가.jpeg 스위스의 어느 호숫가에서 (c) noi 2025



그렇게 여행을 다녀오고

정신없이 친구를 만나고

좋아하는 드라마도 실컷 보고

해야 할 일은 다 미루고 - 물론 중요한 일은 해야 했지만 -

한 이주일 정도를 그러고 나니 오늘 그래도 이만큼은 글이 써졌다.

신기하고, 고맙다.


오래 달리고 싶으면 반드시 쉬어야 하는데 그런데 자꾸 그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린다.

쉬는 시간은 결코 허비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다시 에너지를 듬뿍 채우는 일이며 그것은 고생한 나를 꼬옥 끌어안아주는 일.

그것은 무거운 가방을 잠시 내려놓는 일이며 그리하여 더 멀리까지 걸어가기 위한 일.

그 휴식이 조금 길어졌다고 해서 절대로 나를 탓하면 안 된다.

그것은 휴식보다도 몇 배는 더 긴 날들을 열심히 달려온 그 시간들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나 다름없으니.

열심히 살아온 내 인생도, 그래서 조금 늘어지는 나의 휴식도 모두가 소중한 나의 인생의 한 조각들이니.





Photo by n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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