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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유학, 너무 늦은 거 아닐까?

by 노이의 유럽일기



학교앞노을.JPG 독일어 수업 듣느라 지친 마음을 위로받던 학교 앞 노을 (c) noi 2020



나는 서른셋에 독일의 한 대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자주 석사 공부를 하는 것이냐고 묻거나 혹은 그렇다고 착각했다. ‘착각했다’는 단어를 고른 이유는 내가 늘 "학사입니다"라는 설명을 붙임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내가 석사 공부 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서른에 대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곧 ‘석사’ 혹은 ‘박사’라는 어떤 각인 같은 게 사람들 머릿속에 이미 찍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나는 그냥 웃으며 다시 한번 설명해주고는 했다.



내가 무슨 공부를 하는지 제대로 기억 못 해준다고 서운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서른에 유학, 그것도 학사 공부를 한다는 것이 사회적 시선으로는 꽤 늦었다고 보는 경향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의 생각은 ‘야인(Jein)’이다. ‘야인(Jein)’은 독일말로 ‘네니오’라는 뜻이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것이다.



‘반드시’라는 것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20대 초반 늦어도 중반에 대학을 간다. 나는 생일이 빨라서 열아홉 살에 서울의 한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재수는 하지 않았다. 해봤자 별로 다를 게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저 인서울에 감사했다. 어쨌든 나도 남들 가는 시기에 맞춰 대학을 갔다. 그래야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렇게 과거의 내 경험과 지금의 나를 비교를 해봐도 서른셋에 시작한 내 유학은 늦은 게 맞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독일어를 공부하고 새로 들어간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내내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공부가 가장 즐거운 시기라는 것을 마음 깊이 느끼며 지냈다. 공부가 재밌다고?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냐고? 앞에 재수를 안 한 이유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한창 메이플 스토리에 빠져있었던 열여덟의 내게 공부가 재밌었을 리 없었다. 그런데 서른이 넘어서하는 공부가, 신기하게도 참 재밌었다. 힘든데 재밌었다. ‘고등학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겠다’라는 생각이(생각만) 절로 들었다. 지금도 사람들에게 내가 공부했던 전공에 대해 이야기하면 늘 재밌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2020일기.JPG 물론 재밌기만 했던 건 아니었던 2020년의 어느 날 일기 (c) noi 2020




열아홉에 공부했던 일어일문이나 경영학도 아주 싫지는 않았다. 일본어를 좋아해서 들어갔던 과였기 때문에 적성에 안 맞지 않았고, 경영학은 취직에 도움이 될 거라고 해서 복수전공을 한 것이었는데 회계 같은 과목을 제외하고는 의외로 흥미로웠다. 그래도 독일어를 공부할 때처럼 열심히 하거나, 도시문화학(독일에서의 내 전공이다)을 공부할 때처럼 ‘와 너무 재밌다!’라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그러니 내게 서른셋에 시작한 유학은 사회적 시선으로 보기에는 늦은 것이었으나 내 만족도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결코 늦지 않은, 오히려 적당한 때였다는 생각이 들고야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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