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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브런치는 그만 쓰자

by 노이의 유럽일기

요즘 너무 바빴다. 바쁘다기보다는 체력이 많이 지친다.

, 는 건 사실이자 핑계다. 구독해 주신 분들은 알겠지만 10월에 제13회 브런치북프로젝트에 응모를 했다. 겉으로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다 쓰고 응모한 것만으로도 잘했어'라고 나를 토닥였지만 떨어질게 불 보듯 뻔한 그것, 그 결과를 알기가 마음 깊이 두려워 한동안 브런치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렇게 한동안 브런치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 오늘 자러 가기 전 고된 업무에 지친 발을 닦다가 갑자기 브런치북이 떠올랐다.



‘혹시 내가 안보는 사이에 브런치북 당첨됐던 게 아닐까?

연락을 못 받아서 취소된 건 아닐까?'



왼발에서 오른발로 비누거품을 묻힌 손을 옮기며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아니야 됐을 리가 없지. 안 될 거 알았잖아. 이제 브런치는 그만 쓰자.'



인간은 있는 힘껏 다해 부딪힌 도전에 대한 실패의 좌절을 맛보기보다는, 스스로 미리 포기하는 게 좀 덜 아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일단 덜 아프려고 미리 포기한 다음 오랜만에 브런치에 로그인을 했다. 막상 들어와 보니 아직 발표날짜도 되지 않았다.



기왕 들어온 김에 그간의 통계와 좋아요, 댓글 알림을 주르륵 훑어보는데 뭔가 그래프가 평소와 다르게 솟구친 날이 있었다. 멤버십 한정으로 걸어놓은 글인데 조회수가 천이 훌쩍 넘었다. 이런 경우는 보통 다음이나 브런치 메인에 소개가 되는 경우인데, 멤버십 한정으로 쓴 글도 이렇게 풀리는지는 몰랐다.



'그래도 내 동의 없이 이렇게 공개해도 되는 거야? 아니면 연락이 왔었나?'



이런 생각들을 하며 알람 페이지를 뒤지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브런치에서 연락이 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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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한 달 전에 온 연락을 지금 발견하다니. 이럴 수가. 아무튼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좋아요를 눌러주셔서 오랜만에 도파민이 터졌다.



그러다 또 평소와 다른 알람을 하나 발견했다.



"나의 멤버십에 새로운 구독자가 생겼습니다."




멤버십...? 구독자...?

사실 브런치에 멤버십 기능이 생긴 지 꽤 된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동안 선뜻 멤버십 글을 올릴 용기는 나지 않았었다. 내 글을 과연 누가 돈을 주고 읽을까 싶었다. 그러다 브런치북 프로젝트 응모를 계기로 용기를 냈다. 상금 500만 원을 목표로 평소보다 훨씬 정성 들여 쓴 글이니 이 정도면 멤버십으로 발행해도 괜찮겠다는 자신감이 조금 생겼더랬다. 일단 올리긴 했지만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당선에 대한 기대가 희미했던 만큼 누군가 멤버십 구독을 하리라는 기대 또한 희미했다. 그런데 생긴 것이다. 첫 멤버십 구독자가!



분명 10분 전까지만 해도 발을 닦으며 이제 브런치는 포기하자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브런치에 또 한 번 소개가 되고, 그 글에 또 많은 분들이 좋아요를 눌러주고, 그것도 모자라 첫 멤버십 구독자까지 생겼다고 하니 갑자기 마구마구 글을 쓰고 싶어졌다.



사실 평소에 유명한 연예인이나 프로게이머, 운동선수 같은 사람들이 수상 같은 걸 하면 "이게 다 팬 여러분 덕분입니다"라는 인사를 하는 걸 볼 때 공감이 잘 안 됐다. 물론 팬의 영향은 있겠지, 그래도 좀 오버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 나에게 찾아온 선물 같은 응원들이 그 마음을 이해하게 했다.



이제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들어왔을 때 내 브런치가 고요했다면 어쩌면 나는 정말로 포기해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로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좋아요와 멤버십 구독이 다시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새하얀 편집 화면에 다시 검은 글자를 두드리게 만들더니 지금 이렇게 또 글을 쓰고 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브런치북 프로젝트의 발표는 12월 17일. 하필이면 최근 새로 다니기 시작한 직장의 수습 기간이 끝나는 날짜와 같다. 12월 17일이 되면 그간 열심히 일한 4개월의 수습기간이 평가를 끝내고 내 근로 계약서가 정규직으로 전환이 될지 아닐지가 결정되고, 아닐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그 작은 0.000001%의 희망으로 써낸 11편의 글들이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수상을 할지 말지가 결정된다.



생계를 위한 일도, 꿈을 위한 글도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어 온 마음을 다했던 2025년 하반기. 이렇게 중요한 일들의 결과가 같은 날 이루어진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결과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 자신과 구독자들에게 약속하고 싶다.

브런치 에세이만큼은 2026년에도 계속 써나가겠다고.





ps. 첫 멤버십 구독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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