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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 Jul 21. 2023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다

  -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이 흡입력 뭐지?’ 

어제 하루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169쪽을 읽어 내렸다. 

그리고 남은 100쪽도 오늘 한자리에 읽어 말았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작년 9월에 출간되어 

여러 유명인(유시민 작가나 문대통령님의 평산책방 등)의 추천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여,

읽은 독자들의 입을 통해 또 꼬리에 꼬리를 물어 

현재까지도 그 작품성을 인정받고 꾸준히 읽히는 작품이다.     

빨치산 출신의 아버지의 장례식 3일을 시트콤처럼 이렇게 재밌게, 

하지만 어떤 근대사 책보다도 생생하고 처절하게 풀어낸 작품이 있을까. 

현기영의 <순이 삼촌>이 제주 4.3 사건을 수면 위로 띄우고 

진실과 살아남은 자의 유예된 죽음 같은 삶을 그려낸 것이라면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이념을 떠나 사람 사는 세상,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꾼 빨치산 아버지가 살아낸 삶과,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아낸 삶을 통해 

또 하나의 아픈 역사인 빨치산 이야기를 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절실하게 다뤄내고 있다. 


작품 속 에피소드들이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웃프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 웃음과 포용으로 현실을 헤쳐나가는 모습들이 

해학적이면서도 아프다.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다. 아버지에는 아버지의 사정이, 나에게는 나의 사정이, 작은아버지에게는 작은아버지의 사정이. 어떤 사정은 자신밖에는 알지 못하고, 또 어떤 사정은 자기 자신조차 알지 못했다.     


“오죽흐먼 나헌티 전화를 했겄어. 이 밤중에.” 또 그놈의 오죽하면 타령이었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지난 7월 19일 정지아 작가님을 만났다. 

수요일 오후 2시에 열리는 좌담회였는데 빈자리 없이 꽉 찼다. 

작가는 문학의 힘과 

어머니의 해방일지, 여전히 어우러져 살아가는 구례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소설 속 인물인 '떡집언니'도 구례에 살고 계신다는데 만나보고 싶다, 진심으로.     


어머니의 해방일지를 써보실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어머니께서는, 

지리산에서는 강성의 빨치산이셨지만 ‘자식에게는 자유롭지 못하셔서’라고 하시며 

자신의 단편소설 <검은 방>의 일부를 옮겨와 주셨다.


"딸의 일상이 사소하게 흔들리면 그녀의 삶에서는 우주가 흔들린다. "


아아~ 

마음 한켠이 툭 내려앉았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의 오지라퍼 아버지가 

‘민중’을 위한 일이라며 참견하던 세상만사

결국은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세상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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