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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Dec 10. 2021

차선의 인생

나는 의지박약자다.

무엇 하나 푹 빠져 꾸준히 좋아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어려서부터 호기심은 많아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즐겼지만, 잠깐 관심을 보이다 금세 질려버렸다. 하나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성공한 덕후들의 이야기는 나와는 거리가 너무 먼 것 같았다.


그런 나도 꿈에 관해서만은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나는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란 책을 읽으며 꿈을 키워온 한비야 키드다. 총알이 머리 위로 날아다닐 만큼 위험한 나라에서 굶주리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그가 대단해 보였고 경외심마저 들었다.

 

“무엇이 여러분의 가슴을 뛰게 하나요?”


그가 책에서나 강연에서 항상 묻는 질문이었다. 가슴 뛰는 일을 하라는 그 말이 마치 신의 계시처럼 마음에 콕 박혔다. 열심히 공부했다. UN 국제기구에서 멋지게 연설하고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여자 어른을 상상하며 수능을 준비했다. 6년을 꼬박 준비했음에도 수능 성적은 좋지 않았다. 수능 시험을 보고 집에 돌아와 ‘난 망했어~’하며 꺼이꺼이 울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내 성적으로는 희망하던 국제기구 관련 학과나 UN 인턴십 프로그램이 있는 대학교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차선으로 얼떨결에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했다. UN 공용어인 영어, 불어를 배우면 어찌 되었든 국제기구에서 일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을 쌓는 거라 생각했다. 솔직히 영문과를 가고 싶었지만, 영문과 입학 성적이 불문과 입학 성적보다 높았기에 이것도 차선의 선택이었다.


1년을 다녀보니 불어를 배운다고 내가 국제구호전문가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불어를 할 줄 아는 동기도 꽤 있었고, 스무 살에 ‘네 이름은 뭐니?’ , ‘고마워, 미안해’ 같은 초급 수준의 표현을 배우는 마당에, 어느 세월에 실력을 키워 UN에 가겠나? 싶었다.


세계적인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꿈을 이룰 수 없겠지만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만큼은 잃고 싶지 않았다.  2학년 2학기를 마치고 겨울 방학 동안 국제 NGO의 한국 지사에서 인턴으로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주거 문제 해결이 이 단체의 존재 이유였는데, 내가 맡은 일은 집 없는 사람을 위해 집을 지어주거나 식사를 제공하는 일은 아니었다.


내가 하는 일은 연말 기부금 영수증 처리 업무였다. 거의 1만 명에 가까운 후원자 DB를 엑셀로 보며 주소나 후원 금액이 맞나 확인하고, 이상이 있으면 후원자에게 전화해 안내하는 업무였다. 매일 같이 시트를 들여다보며 콜센터 직원처럼 응대하는데, 다짜고짜 자동이체가 잘못된 것 같다며 화를 내는 분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했고, 매일 기계처럼 반복되는 업무가 지루해졌다. ‘이렇게 사무실에 앉아서 컴퓨터만 보고 있으면, NGO 직원들은 언제 나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거지?’, ‘후원금이 직원들 월급으로 쓰이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NGO와 달라서 속으론 실망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비영리 단체에 소속되어 일하는 것보다 차라리 빌 게이츠처럼 돈을 많이 벌어서 재단을 설립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 일도 한비야가 말하던 가슴 뛰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겠다는 마음도 생각보다 빠르게 식었다. 고작 2개월의 인턴십으로 얼마나 영향력 있고 많은 일을 해볼 수 있겠냐마는, 어린 마음에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며 단념했다.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너무 쉽게 내 꿈을 포기한 것만 같아서 씁쓸했다.


어쩌면 국제기구에 소속되어 외국인과 외국어로 대화하는 내가 멋있게 보일 것 같아서 매력을 느꼈던 건 아니었을까. 아니면 세계 여행을 하다가 긴급구호팀장이 되어 <세계 테마 기행> 같은 TV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나라를 돌며 일한다는 것 자체가, 그러니까 여행을 하면서 일도 하는 게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일이 뭘까?

그때 꾸던 꿈과 다른 길이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원하는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일은 일이고, 나를 책임지기 위한 수단이며, 좋아하는 일만   없다는 생각을 여러  한다.  순간 가슴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체 일하는 시간을 10으로 봤을 , 스트레스를 받거나 아님 어떠한 감정도 없이 주어진 일을 하는  8이라면 가슴 뛰는 순간은 2 되는  같다. 경쟁 PT에서 다른 업체를 제치고 수주를 따냈을 때의 짜릿한 쾌감, 밤새워 준비한 자료를 상사 앞에서 발표했는데 아이디어가 좋다며 인정받았을  잠깐의 뿌듯함 같은 .


오래전  마음을 사로잡았던 ‘가슴  오히려 일하는 순간이 아닌 다른 때에  자주 찾아오는지도 모르겠다. 20 만에 수영을 다시 배운 , 처음에는 동작이 서툴렀지만 어느새 몸이 기억하고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갈  벅찬 감동처럼.


돌이켜 보면 나는 줄곧 차선을 선택해왔다.

어쩔 수 없을 때도 있었고, 최선이라 믿었던 일을 막상 겪어보니 실망해 차선을 택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이 최선이고 무엇이 차선인지 지금에 와서는 그 경계가 흐릿해지는 듯도 하다.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후회가 덜한 쪽이 차선이라면 그 선택은 최선이 된다.
차선은 마지못해 택한 수준의 선택지가 아니다.


줄 세우기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1이나 ‘최고’란 단어가 붙어야만 옳고 좋은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최고에 가까운 최선, 동경의 대상이 걸은 길을 그대로 쫓는 게 최선이 아니고,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믿으며 나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게 최선이다. 나는 길을 만드는 기나긴 여정을 통과하고 있을 뿐이며, 모든 선택이 결국은 나를 위한 최선임을 믿는다.  






지난 6월 '서사 당신의 서재'의 에세이 수업에 참여하며 '어린 시절의 꿈'을 주제로 작성한 글입니다.

한수희 작가님의 피드백을 참고해 퇴고를 거쳤으며,

수강생 40명의 글을 엮은 에세이집을 통해 다른 이야기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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