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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기 Jan 07. 2021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말하는 '기후 카지노'

기후카지노

윌리엄 노드하우스. 황성원 옮김. 한길사


판돈이 적고 빠른 시일 내에 정답을 알게 될 것 같다면 바퀴가 멈출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경우 정답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 안개 낀 밤에 전조등을 끄고 커브길이 없기를 기도하면서 시속 100마일로 운전하는 것과 같다. 안개가 걷히고 난 뒤 바로 재난을 맞닥뜨리게 되느니 지금부터 조금씩 실천을 하는 것이 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불확실성과 관련된 경제학적 연구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이어진다. 생산량, 인구, 배출량, 기후변화에 대한 최상의 시나리오로 시작해서 이 시나리오의 비용과 영향을 가장 잘 처리할 수 있는 정책을 채택하라. 그러고 난 뒤 기후카지노에서 가능성은 낮지만 중요도가 높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경우를 고려하라. 이런 위험한 결과에 대한 대비책을 면밀하게 마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라. 문제가 그냥 사라지리라고 절대로 넘겨짚어서는 안 된다. (57쪽)


읽기 전에 좀 고민을 했다. 기후변화와 에너지에 대한 책을 또 읽어야 하나... 하지만 읽으면서 이 책은 기록을 꼭 해놔야지 싶었다. 


저자의 스펙으로만 보면 이 분야 책들 가운데 독보적이다. 예일대 경제학 석좌교수, 201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책은 그 유명한 상을 받기 전인 2013년,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낸 것이다. 교토의정서 체제는 끝났고(저자는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고 그런 측면이 실제로 있지만 국제사회의 대응체제를 어쨌든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계만을 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파리 기후변화협정(2016년)은 나오기 전의 그 시기.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거치면서 '기후변화 스핀(기후변화 따위는 없다~ 과장됐다~)'이 판을 치고 미국인들의 인식수준은 점점 정치적 스펙트럼에 따라 곤두박질치던 시기. 오바마 정부의 기후변화 대책은 번번이 공화당에 발목을 잡히다 못해 아무 것도 못 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도널드 트럼프 시절 같은 최악조차 아니었던 시기.


1958년 하와이 섬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관측하기 시작한 과학자들의 선견지명 덕분에 우리는 50여 년에 걸친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마우나로아 관측소에서 2012년까지 매달 관측한 결과 50년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25% 증가했다.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가 인간활동 때문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기후과학자들은 빙핵을 이용하여 지난 수백만년 동안 이산화탄소 농도가 190ppm에서 280ppm 사이였다고 추정한다. 그런데 이제는 390ppm을 넘어섰으니 지구는 호모사피엔스 출현기의 이산화탄소 농도 범위를 훨씬 벗어나게 되었다. (61쪽)


기후변화는 얼마나 끔찍한 재앙을 가져올 것인가, 해수면이 얼마나 올라가서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어떤 재난을 당할 것인가. 중요한 문제이지만 경제학자인 노드하우스가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그런 쪽은 아니다.  


기후변화정책에서 주요한 교환관계는 내일의 소비와 오늘의 소비 간의 균형을 맞추는 데 있다. 오늘의 소비 100단위를 희생하여 기후에 투자할 경우, 미래의 소비를 200단위 늘릴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이 좋은 투자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으려면 현재의 소비와 미래의 소비를 어떻게 비교해야 할까? 이는 할인을 통해 가능하다. 할인 논란의 중심에는 할인율을 규범적인 관점에서 도출할 것인가, 아니면 기술적(기회비용) 근거에서 도출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먼저 규범적 관점부터 살펴보자. 저명한 영국 경제학자 니콜라스 스턴과 다른 저자들은 스턴보고서에서 미래세대의 행복을 할인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처사라고 주장했다. 호소력 있는 주장이긴 하지만, 주택이나 에너지소비 같은 것에 적용되는 상품에 대한 할인율과 다른 시기 또는 다른 세대의 사람들의 행복에 대한 할인율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미래의 사람들이 지금의 사람들보다 더 부유하다면, 우리는 그들의 소비가 현 세대의 소비보다 가치가 낮다고 평가할 수 있다(즉, 할인하게 된다). 
기술적인 학파는 이런 철학적 고려가 기후변화 투자를 둘러싼 결정과는 전체적으로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할인율이 주로 사회가 대안적인 투자에서 얻을 수 있는 실제 수익에 좌우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각국은 주택, 교육, 예방의학, 탄소감축, 해외투자 등 다양한 투자를 할 수 있다. 기술적인 관점에 따르면, 할인율은 주로 자본의 기회비용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자본의 기회비용은 대안적인 투자의 수익률이 결정한다. (272-274쪽)


노드하우스의 관심은 경제적 영향과 해법, 그 해법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주의해야 할 사항, 그 해법에 넣어야 할 것들과 그것들에 대해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 점검해야 할 것들, 제도와 정책을 만들 때 기본 전제가 돼야할 것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해야 할 것들에 집중돼 있다. 말하자면 기후변화 대응체제의 틀이 돼야 할 경제적 개념과 정책 제언을 설명해놨다. 


에너지 부문 등에 대한 경제적 개입의 역사는 시장메커니즘을 이용하는 것이 최선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시장메커니즘 중에서 오늘날 누락된 가장 중요한 방식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높은 가격을 매기는 것, 즉 ‘탄소가격’을 부과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낮추는 방향으로 행동을 바꾸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바로 이산화탄소 배출에 가격을 매기는 것이다. 정부는 사람들이 자신의 배출에서 파생되는 모든 비용을 확실히 지불하게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탄소에 가격을 매긴다는 것은 이산화탄소 배출감축을 우위에 두겠다는 결정을 사회적으로 내렸음을 의미한다. (320-321쪽)


탄소가격의 아름다운 점 중 하나는 복잡한 탄소 관련 결정들을 단순화시킨다는 데 있다. 이는 여러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정보의 양을 줄이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모든 탄소배출에 대해 가격이 매겨질 경우 탄소를 이용하는 모든 활동의 시장가격은 사용된 연료의 탄소함량에 탄소가격을 곱한 값만큼 증가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치르는 가격 중 탄소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이 얼마인지 알 수는 없을 테지만 굳이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탄소가격은 배출감축에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공정한 방식을 취하며, 생산에서 혁신에 이르기까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이 효율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보를 최소화시켜준다. (327-329쪽)


탄소세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이상적인 세금에 가장 가까운 형태다. (이산화탄소 배출이라고 하는) 달갑지 않은 활동의 결과를 줄여준다는 점에서 이는 고려 중인 세금 중에서 유일하게 경제적 효율성을 증대시켜줄 수 있는 세금형태다. 또한 해로운 배출, 특히 석탄연소와 관련된 배출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한 공중보건상의 혜택을 가져올 것이다. 탄소세는 많은 비효율적인 규제안에 힘을 실어주거나 이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 효율성을 훨씬 개선시킬 것이다. (335쪽)


국가 간 정책을 서로 조화롭게 조정하는 데는 두 가지 접근법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유럽연합이 운영했던 또는 교토의정서가 제안했던, 국제적인 총량제한거래제 정책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두번째 접근법은 각국이 서로 조화된 최소탄소가격에 합의하는 체제가 될 수 있다.
최소탄소가격에 합의하고 난 뒤 각국은 탄소배출에 대해 이 최소가격을 부과한다. 기후변화협상을 꾸준히 주목했던 사람들에게 총량제한거래제의 구조는 상대적으로 익숙한 반면, 탄소가격제도는 새로운 발상이다. 기본적인 개념은 각국이 배출한도보다는 탄소가격에 합의하는 데서 출발한다. 각국이 근거로 삼을 만한 탄소가격에 대한 문헌은 상당히 많다.
국제 표준가격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골조가 되는 협약이 필요하다. 중요한 점은, 최소가격에 대한 협상은 개별국가의 배출한도에 대한 완성된 형태의 협상에 비해 훨씬 간단하리라는 점이다. (360-361쪽)


탄소가격제 개념과 탄소세 논의, 기후변화의 피해에 사람들이 둔감한 것을 할인율 개념으로 해석한 것, 자연 생태계의 '가격'을 논하는 것이 대중들을 설득하는 데에 필요한 이유, 윤리적 접근의 의미와 한계, 인간이 관리할 수 있는/관리되는 시스템과 관리할 수 없는 시스템의 특성을 통해 기후변화의 파괴력을 논한 것, 시장을 신뢰하면서도 국가의 개입을 적극 요구하는 것, 기술적 혁신을 앞당기기 위한 제언 등등은 아주아주 재미있었다. 


지구온난화를 늦출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첫째, 시장에서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가스 배출의 가격을 형성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둘째, 자유시장은 이 일을 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각국은 총량제한거래제나 탄소세시스템을 이용하여 이산화탄소 가격을 형성해야 할 것이다. 셋째, 이를 위해서는 대부분의 국가가 첫 두 단계에 동의하고 전 세계 수준에서 자신들의 정책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제적인 기후변화협약에는 무임승차를 억제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메커니즘이 들어 있어야 한다. 
현실을 감안했을 때, 가장 유익한 접근법은 각 나라들이 다른 나라의 투자에 무임승차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역제재를 활용하는, 국가별로 어느 정도 조정된 탄소가격제도가 될 것이다. (370-371쪽)


담배문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의사와 과학자들은 끈기 있는 노력을 통해 흡연의 암 유발 여부와 관련된 문제에서 대중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흡연을 억제하기 위한 방편의 일환인 담배세는 오늘날 정부의 주요 재원이다. 그런데 높은 탄소세에는 인간의 건강, 지구, 정부예산과 관련하여 담배세보다 더 거역하기 어려운 경제 논리가 있다.
과학자들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하다. 반대 측이 아무리 공격해봤자 과학의 분명하고 끈질긴 설명을 대체하지 못한다. 반대 측의 공격에 대한 반박 역시 마찬가지다. 흡연이 그랬듯이 기후과학의 증거는 매년 분명해질 것이다. 방해꾼들은 녹고 있는 유빙에 올라탄 신세가 될 것이며, 정치의 풍향은 결국 바뀔 것이다. (463-464쪽)


의혹을 팝니다- 기업의 용병이 된 과학자들


파리 협정이 성사되고 중국과 인도의 태도가 바뀌고 '툰베리 세대'의 등장과 트럼프의 집권-퇴진이 숨가쁘게 이어지기는 했지만, 책이 나온 후의 그런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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