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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기 Jan 07. 2021

[Q&A] 한국 선박 나포한 이란

지난 4일, 사우디아라비아를 떠나 아랍에미리트연합(UAE)으로 향하던 한국 국적 유조선 '한국케미'가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됐습니다. 이란 언론 보도와 이란 정부의 입장을 종합하면, 유조선이 환경 오염을 일으켜서 붙잡았다고 합니다. 나포된 선원들은 한국인, 인도네시아인, 베트남인, 미얀마인 등 20명이고 이란 남부 항구도시인 반다르압바스에 구금돼 있다고 합니다. 이란 측은 이 선박이 ‘반복적으로 환경 규제를 위반했다’고 밝혔으나 선사인 디엠쉬핑 쪽에서는 “이란 혁명수비대에 끌려간 지점은 이란 영해가 아닌 공해인데다 환경오염은 일으키지 않았다”고 반박했습니다.  


Iranian forces seized the Hankuk Chemi, a South Korean tanker, in the Persian Gulf on Monday. Tasnim News Agency, via Epa



작년 1월에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미군이 이라크에서 살해했지요.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높아지고 한국군 청해부대가 그 일대에 배치됐는데요. 환경오염을 이유로 들었다지만 정치적 억류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란 군의 중요한 축인 혁명수비대 내의 정예부대 ‘쿠드스’의 사령관인 거셈 솔레이마니가 살해된 지 1년 되는 시점이죠. 호세인 살라미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이 2일 걸프 해역에서 적대행위에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미국을 겨냥해 고강도 발언을 하고 이틀 뒤에 한국 선박 나포가 일어났습니다. 미국이 이란의 군사행동에 대비해 핵항모와 핵잠수함을 걸프에 배치하고 B-52 전략핵폭격기를 출격시켜 무력시위를 벌이는 등 이란을 압박하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나포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한국군 청해부대도 출동했다고 우리 국방부가 발표했습니다. 이런 긴장 속에 벌어진 일이니, 이란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겠죠.

미국과 이란이 걸프에서 대치하는 상황이고, 동시에 미국의 조 바이든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미국은 이란과 2015년 핵합의를 했는데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일방적으로 깨버렸습니다. 이란은 그 후 국제사회에 핵 활동을 단계적으로 강화하겠다고 선언했고, 한국 선박을 나포한 날 우라늄 농축 농도를 20%로 상향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11월 핵과학자 모흐센 파흐리자데가 테헤란 부근에서 이스라엘 소행으로 보이는 테러로 숨졌을 때 이미 이란 의회가 우라늄 농축 농도를 20%로 올리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20% 농축이면 무기급은 아니고 핵발전소 연료용에서 연구용, 의료용으로 가는 중간단계 정도입니다. 하지만 핵합의에 규정된 농축 한도가 3.67%이기 때문에 합의를 어기는 것은 사실이고, 미국은 강력 비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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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트위터에 조 바이든 차기 미국 행정부가 핵합의로 복귀하고 이란 제재를 해제하면 "결정을 뒤집고 합의 내용을 모두 지키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란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행보들은 모두 바이든 정부와의 협상을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한국 선박을 나포한 것도, 미국을 겨냥해 빨리 관계를 풀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걸프 해역 입구인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3분의 1이 지나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이란은 미국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해협 봉쇄를 위협했고, 여러 차례 선박을 나포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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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미국은 한국 선박 나포를 비판하고 억류 해제를 요구했습니다. 미국 국무부가 곧바로 대변인 명의 성명을 내고, 이란이 걸프에서 항행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비판했지요. “우리는 이란에 유조선을 즉각 억류해제하라는 한국의 요구에 동참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란이 한국 선박을 붙잡아서 미국의 제재를 푼다는 게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그만큼의 지렛대가 될 수 있을까요. 이란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것 같고요. 한국을 겨냥한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가 생각해볼 것들이 많습니다. 



한국이 이란 자금을 묶어두고 있는 것에 대해 이란은 계속 불만을 표해왔습니다.


국내 이란 전문가가 소셜미디어에 소개한 걸 보니까 이란 현지의 한 신문은 1면 톱 기사에 ‘도둑을 잡았다’라는 제목을 달았다고 하네요.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은 선박 나포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70억 달러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일각에서 이란이 인질극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이란 돈을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은 한국”이라고 했다네요.
미국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동시에, 미국의 제재를 따른다는 명분으로 계속 자금을 내주지 않는 한국에 강도 높게 불만을 표한 것으로도 해석됩니다. 한국 외교차관이 이란을 방문해서 이 돈 문제를 협상하려고 하던 참에 이란이 선박을 나포했으니, 한국 정부를 압박하려는 목적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 입장에서는 70억달러면 무시 못할 돈입니다. 


한국은행과 IBK기업은행, 우리은행 등에 예치돼 있는 이 자금은 한국이 이란에 내줘야 하는 돈이 맞습니다. 한은에 예치된 것이 지난해 9월 기준으로 3조4400억원 정도 된다는데 대부분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이 지급준비금으로 맡겨놓은 돈이라 하고요.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에 묶여 있는 것은 한국이 이란에 원유 값으로 줘야 할 수입대금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2018년 이란 제재를 강화하자 한국 정부가 동결시켜버렸습니다. 70억달러, 약 8조원이니 적잖은 액수입니다. 특히 제재를 당하고 있는 이란 입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돈이겠지요. 

우리가 동결자금을 내주려면 미국의 제재부터 풀려야 하는데...


이란 정부 대변인은 한국을 인질범이라 비난하면서 한국이 이란으로의 의약품 수출을 2019년 중단한 것도 거론했습니다.  


[구정은의 ‘수상한 GPS’]의약품 수입까지 끊은 미 제재, 한-이란 관계에도 결정타 


이란이 이 자금을 코로나19 백신 구매에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한국 정부와 이란 정부가 협의했고 미국 정부도 승인을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이란이 핵활동이나 군사적 용도와 상관 없는 인도적 거래를 위해 자금을 쓰게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이란 입장에서는, 자기네 돈을 자기네 마음대로 쓰는 게 아니라 타국의 결정에 맡기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도, 원화로 예치된 자금을 국제 백신 공동구매 프로그램인 코백스로 보내 백신을 사려면 달러화로 먼저 바꿔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자금이 확실하게 풀릴지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라 보고 이란이 망설일 수도 있지요. 



호르무즈 긴장이 더 고조될까요?

이란 측이 호르무즈 청해부대 파병 같은 군사적인 내용이 아니라 환경오염 명분을 내세운 것으로 봐서, 갈등을 더 크게 증폭시키려는 생각은 없는 듯합니다. 이란 외교부도 이 문제는 어디까지나 환경규제와 관련된 ‘기술적인 사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혁명수비대가 국내정치적 목적으로 한국 선박을 붙잡은 측면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지난해 미군에 피살된 솔레이마니는 이란 정예부대인 혁명수비대의 총사령관은 아니었지만 워낙 국민적 인지도가 높은 강력한 군사지도자였습니다.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등 아랍권 전역의 이른바 ‘시아파 벨트’ 지역에서의 군사작전을 총괄하고 있었고요. 솔레이마니가 살해된 뒤 혁명수비대의 존재감과 리더쉽이 많이 약해졌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혁명수비대는 군대인 동시에, 이란 경제의 여러 부문을 쥐고 있는 막강한 집단입니다. 과거 강경보수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정권 때 혁명수비대에 경제권력까지 대대적으로 몰아줬거든요.
도발적인 대외 군사작전을 벌이는 것, 혁명수비대가 경제까지 주무르는 것에 대해 이란 내에서 반발이 적지 않습니다. 올 6월 대선도 있고요. 중도온건파 하산 로하니 정부가 선박 나포에 개입을 했는지 혁명수비대의 독자적인 작전인지는 불확실합니다만,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는 우리 앞바다이고 우리가 통제한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돌출 행동을 벌인 것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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