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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s Adventure Jan 12. 2023

어쩌다보니 로마 한달 살기

벌써 그게 2021년 일이네요.

지난 2021년 가을에 써 둔 글인데 발행을 안 했네요...?ㅋㅋㅋㅋ 늦은 발행!




올해 1월이 아빠의 칠순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가족끼리 큰 축하를 하질 못했다. 엄마 아빠 좀 편하고 좋은 휴양지로 여행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ㅠ-ㅠ 그게 늘 마음에 걸렸었는데, 코로나가 끝나질 않으니까 이러다가 내년 후년에나 여행을 가려나 싶었다. 근데 그러다가 언니가 직장을 잡아서 급 로마에 가게 됐고, 아직 유럽 여행을 안 가 본 아빠를 로마에 보내드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릭과 내가 마일리지를 탈탈 털면 로마까지 비즈니스 왕복을 끊을 수 있더라? 그래서 엄마 아빠에게 로마 여행을 제안을 했고, 엄빠는 한국에서 나는 미국에서 로마로 가게 됐다.


로마는 약 15여년 전, 대학생들 중 대 유행이었던 유럽 배낭여행 때 가본 적이 있다. 그때는 돈이 없어서 18인실 유스호스텔에서 귀마개 끼고 자고, 웬만한 거리는 죄다 걸어다녔고, 레스토랑에서 밥을 사먹기는 커녕 슈퍼마켓에서 빵이랑 치즈를 사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다녔었다. 이번에 로마에 오면서 너무너무너무 기대됐던 건 바로 맛난 음식들!!! 꺄아아아앙. 돈을 번다는 게 가장 행복할 때가 바로 이럴 때다. 가고 싶은 레스토랑에 갈 수 있고, 가격을 너무 걱정하지 않고 먹고 싶은 걸 시킬 수 있을 때 ㅠㅠ 너무너무 행복하다. 데헷. 예를 들면 엊그제 언니 생일 겸 한식당에 갔는데 떡볶이가 13유론가 그랬다. 가난한 배낭여행객에게 13유로는 거의 도미토리 1박 값이었기에 상상도 못했는데. 따흑 ㅠㅡㅠ 뭐 매일 13유로짜리 떡볶이를 먹진 않겠지만 그래도 가끔 이렇게 먹을 것에 돈을 쓸 수 있다는 게 넘 좋다.


게다가 배낭여행 다녔을 때는 한창 성수기라서 꼭두새벽같이 돌아다녀도 어딜 가나 줄이 길고 기다려야 했는데, 이때는 코로나로 인한 여행객 규제가 갓 풀린 때여서 (오미크론 나타나기 직전!) 세상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다? 어느 정도였냐면 바티칸 문 여는 시간에 갔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3명 뿐이었다. 헐! 배낭여행 왔을 때는 분명 새벽같이 갔는데도 거의 2시간 기다렸다가 들어갔는데. 사람이 없으니까 어딜 가도 사진 찍기도 수월하고 줄도 없고 식당도 널럴~ 너무 좋았다.










장님과 맹인의 로마 모험기



엄빠는 일정  로마에 나보다 4 정도 일찍 도착했다. 언니는 일이 바빠서 같이  다녔고, 영어도  못하는 엄마 아빠 둘이서  험난한 (?) 로마를 열심히 탐험하기 시작했다.  걱정이 돼서 하루는 콜로세움, 하루는 바티칸, 하루는 로마 시내 등등 한국어 투어에 뺑뺑이(?) 돌리는  어떨까 제안을 했다. 근데 엄빠는 둘이서 다니는  좋다며 투어를 거부하셨고언니가 같이 가니는 것도 아니고, 두분이서만 다니는  마치  가에  놓은 애기처럼 내내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단톡방에 어떻게 잘 돌아다니고 계시는 지 물었다. 그랬더니 아빠의 답장 “장님과 맹인이 협력해서 잘 다니고 있음”이라고 했다. 아핳핳핳핳핳


장님과 절름발이가 서로 협력해서 잘 다닌다는 말을 잘못 말한건데 이게 더 웃겼다ㅋㅋㅋㅋ 장님이 결국 맹인인데ㅋㅋㅋ 더 웃긴 건 언니나 나나 저 카톡을 보고도 이상한 점을 한 5분 동안 못 알아챘다. 그 후로 장님과 맹인의 시트콤같은 에피소드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가 목살을 사고 싶어서 이마트같은 슈퍼에 갔다. 거기 정육점 코너까지는 어케저케 찾아냈는데 문제는 목살 달라는 걸 어떻게 말하느냐다. 엄마는 일단 피그 (pig)라고 말했는데 정육점 직원은 못 알아 들었는지 알아 들었는지 뭐라뭐라 대답을 했다다. 아빠는 피그라고 하면 안되고 포크 (pork)라고 정정했다. 근데도 정육점 직원이 잘 못 알아듣는 듯 또 뭐라뭐라 하니까 엄마 왈 “피그 넥! 피그 넥” 하면서 손으로 본인 목을 치는 제스쳐를 했다ㅋㅋㅋ 앜ㅋㅋㅋㅋㅋ 근데 그 직원이 찰떡같이 알아듣고 목살 한 팩을 꺼냈다ㅋㅋㅋ 손짓 발짓으로 어떻게 소통이 됐다. 게다가 그 정육점 직원이 잘생겼다고 엄마가 이름까지 기억하더라. 엔리꼬라고ㅋㅋㅋㅋ 엄마의 억양으로는 엔리꼬의 리를 올려줘야 한다.


참고로 영어로 목살은 포크 숄더 (돼지고기 어깨살)이라고 하는데, 엄마가 목살을 피그 넥이라고 한 게 너무너무 웃겼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탈리아어로 목살 부위를 진짜로 “돼지고기 목에 있는 살”이라는 의미의 단어더라?ㅋㅋㅋㅋ 뒷걸음 치다 황소 잡는 격으로 의사소통이 잘 됐다.


에피소드는 주로 마트에서 일어났다. 엄마, 아빠, 나 이렇게 마트에 갔는데, 들어가는 입구를 못 찾겠는 거다? 읭. 사방 팔방으로 돌아다녀봐도 입구를 못 찾겠다가 드디어 아빠가 문을 발견! 여깄다고 자랑스레 문을 연 순간, 삐용삐용삐용! 아빠가 비상탈출문을 열었다. 진짜 너무 크게 사이렌 소리가 나서 마트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우릴 쳐다봤고 아빠는 화들짝 놀라서 문을 다시 닫았다. 근데 문을 닫았는데도 사이렌 소리가 계속 돼서 식은땀이 줄줄. 우리 가족 모두 깜놀하고 창피했지만 집에 돌아오고 나니까 너무 웃겨서 아핳핳핳핳핳하고 웃음이 나는 에피소드가 됐다.


또 카톡 캡쳐에 나온 것처럼, 엄빠가 벼룩시장에 갔다가 나이키 신발을 건졌다. 아빠는 매의 눈으로 나이키 신발을 발견했지만, 전혀 티를 내지 않고 마치 다른 신발에 관심이 있는 거 처럼 굴었다고 한다. 다른 신발들 가격을 묻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나이키 신발을 가리키며 "하우 머치?"했더니 25유론가 불렀다더라. 그래서 아빠가 "노노~"하고 바로 팽 돌아서 그냥 가려고 하자, 그 사람이 "아이고~ 20, 20"을 불렀다고 했다. 그때도 아빠가 아니라고~ 그냥 또 가려는 시중을 하니까 15유로까지 내려갔다고. 그러자 아빠가 "오케이!"하고 15유로에 샀다고. 가격흥정을 상인과 능수능란하게 실랑이를 하여 가격을 또 잘 깎았다고 아빠가 아주 자랑스러워했다실제로도 자랑스러움. 그 뒤로 계속 그 나이키 신발을 신고 다니면서 "아 이 신발이 아주 편하네~ 15유로면 정말 잘 샀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홍홍홍 귀여우심




이게 벌써 2021년 11월의 이야기라니! 마치 작년 11월 이야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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