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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일라KAYLA Sep 21. 2017

회피回避하다

나는 문제 상황을 회피한다 

처음 프랑스로 와서는 여기를 별세상이라 보았다. 한국 하고는 분명 다를 것이고 뭔가 새로운 삶, 다채로운 삶이 날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프랑스라고 더 나을 것도 없고 더 나쁠 것도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 사는 '나'와 프랑스에 사는 '나' 모두 '나 자신' 이기 때문에 바뀔 것은 더욱 없었다. 



처음 우리 동네로 이사와 사귄 친구였고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마음을 열고 '우리'라는 공동체 개념을 그들과의 '관계'에 포함시켰다. 적어도 '나'는 그러했다. 그들이 우리에게 하는 모든 말에 '내 감정'을 이입하여 생각했고 받아들였고 그래서 나 스스로 스트레스를 키웠다. 아무도 나에게 이렇게 하라 말한 적 없었으니 모두 내 탓이다. 결국 그들은 '타자'이고 나는 '나'인데 이걸 하나로 생각하려 한 게 이런 '부정적' 결과를 불러온 거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다. 부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저 서로 안 맞은 거고 다른 거니까. 우리 인연은 거기까지라고 생각하고 끝을 맺고 싶다. 지금은 그것이 나를 되돌아보게 된 좋은 디딤판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간 나의 인간관계는 어떠하였고 공통적으로 어떤 결말을 갖게 되었는지 쭈욱-훑어보았고 또렸해졌다. 


회피 回避

몸을 숨기고 만나지 아니함.
꾀를 부려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지지 아니함.
일하기를 꺼리어 선뜻 나서지 않음.


나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이것을 해결하려고 갖은 시도하는 반면에, 그래서 될 게 아니라는 판단이 서면 그냥 피한다. 모든 수와 경우를 따지기 보다도 아닌 거 같으면 그냥 '회피'한다.


참을 만큼 참았고 말할 만큼 말했는데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이 되면, 피한다. 그리고 그냥 그 관계는 내버려두고 다른 걸 한다. 나의 회피에도 예외가 있는데 그건 '가족'이다. 혹은 가족처럼 서로가 생각하는 관계라면 피하기보단 더 듣고자 하고 상황을 나아지게 하려고 더 애를 쓰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냉정하다고 해야 하는 걸까?

살붙이고 사는 사람들과 가족들 빼고는 소중하다 생각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소중하다는 범주에 더 이상 누군가를 더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내 핑계를 대보자면, 


그저 그런 관계에 있어서는 마음을 주고 싶지도 않은데 이미 준 마음에 대해서 내가 '무시(상호작용이 되지 않거나'당한다는 느낌, 혹은 내가 가족처럼 느끼는 누군가가 이런 상황을 겪는 것을 참을 수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 그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지 않다. 


이래서 내 인간관계가 좁아지나 보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하고만 소통하고 지내는 듯하다. 

못된 심보를 가지고 있는 건가? 나만 그런가? 


내가 준 만큼 받고 받은 만큼 하는거라고 하는데... 받을 생각으로 더 줘도 안 되고 꼭 받아야 된다는 마음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회피보다도 그냥 흘러가게 두고 싶다. 두고 보다 보면 다시 더 큰 강에서 만날 수도 있고 아니면 영영 멀어질 수도 있는 거고... 그냥 좀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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