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 쓰는 글
좋아하면서 잘하는 일을 찾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체감하며 지내는 20대의 어느 날, 늦은 점심을 준비하다가 아빠가 설거지한 파란 국그릇에 묻어있는 빨간 고춧가루를 떼어내며 생각에 잠긴다.
10여 년 전 두 남매의 학원비를 위해 엄마가 직장인이 된 이후부터 아빠의 설거지 커리어가 시작되었다.
아빠의 설거지는 예술 그 자체다. 물 한 방울도 튀기지 않고, 엄마 못지않게 그 속도도 엄청나며, 음식물 쓰레기 처리도 척척이다. 더불어 그릇에는 알록달록 흔적을 남긴다. 조화롭게 어우러진 덜 닦인 밥풀 찌꺼기와 고춧가루는 마치 화가가 캔버스에 심오하게 담아낸 예술작품의 핵심 메시지 같다.
작품 해석-'내가 설거지했어!'-
이 아름다운 작품은 밤늦게 퇴근한 엄마를 화나게 만든다. -"설거지 좀 제발 하지 말라니까!"- 그릇에 묻어있는 흔적들이 못마땅한 것이다. 그렇게 한바탕 잔소리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엄마는 냉장고에서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참외를 꺼내 돌돌 깎는다.
20년 넘게 관찰한 결과 알콩달콩한 이 부부의 유일한 티격태격 포인트는 항상 설거지였다. 그래도 아빠는 설거지가 좋나 보다. 분명 엄마가 보면 혼날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