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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꼼 Jul 28. 2020

어렸을 때 꿈은

초등학교 때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달리기는 꼴등이고 뜀틀도 못 넘지만 글 쓰는 거 하나는 쉬웠다. 준비 과정도 필요없이 머리 속에서 쓱쓱 쓰면 됐다. 나한테는 글을 쓰는 게 가장 쉬웠고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잘 하는 일이었다. 


머리가 굳은 건 고등학생이 된 이후부터였다. 책을 잘 안 읽고 글 쓸 일이 없으니 저절로 어디선가 나오던 시와 글은 굳어졌다. 어쩌면 시를 썼던 건 내가 어려서 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린 마음 그대로 커야 어른이 되서도 시를 쓸 수 있을텐데 많은 사람들이 그러듯이 난 그러지 못 했다. 



대학을 다니고 이것저것 꿈이 부풀었다 다시 꺼지는 것이 반복됐다. 사기업은 활발하고 대외활동을 휩쓰는 그런 사람들이나 가는 거라고 생각해서 지원할 마음도 없었는데 다 놓치니 결국 취업 준비 밖에 남지 않았다. 의미없는 지원서를 날리고 영어 점수를 만들었다.  


하지만 취업 준비마저도 실패하니 남은 건 시험이었다. 그 해 마지막 면접에서 탈락한 후 6평짜리 원룸에 누워 있다 불현듯 그냥 다 때려치고 시험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려해 본 적 없는 옵션이었는데 왜 그렇게 갑작스럽게 결정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나는 이름 모를 중소기업 인턴 면접을 가지 않고 엄마에게 전화했다. 나 이제 시험 준비 할래. 그래야 될 것 같아. 


초등학생 때 나는 절대 공무원은 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다. 세상 그렇게 지루해 보이는 직업이 없었다. 이름이 공무원인데 저 사람들이 하는 일은 뭔가 싶었다. 선생님은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피아니스트는 피아노를 친다. 하지만 공무원은 뭐 하는 사람들일까? 그냥 지루해보이고 평범해 보이는데. 


그렇게 해서 나는 너무너무 지루해 보였고 평범해보였던,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궁금했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서 공무원이 됐다. 사람들 말이 맞았다. 평범하기가 가장 어려웠다. 






온갖 꿈을 꾸고 취업 준비를 하다 시험 공부를 할 때까지, 그래도 내가 꾸준하게 원했던 조건은 내가 하는 일의 목표와 개인적인 목표 방향이 같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반도체 회사는 반도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일 것이고 편의점 회사는 편의점 점포를 늘려 수익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이다. 나는 반도체를 몰랐고 편의점 업계의 일인자를 거머쥐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숱한 회사에서 탈락한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 회사의 목표와 내 목표가 일치하는 일이 없었다. 패션에 큰 관심이 있거나 IT 분야에 빠져있어서 내가 이 회사의 수익 창출에 기여하고 싶다! 라는 마음이 있었다면 취업 준비에 더 열이 붙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적 목표보단 공적 목표에 좀 더 관심이 있었다. 사익과 공익을 놓고 가치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 개인적 관심사가 기능이 더 향상된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일보단 공적인 이슈에 더 쏠려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되지도 않을 취업 준비를 하기 전엔 항상 NGO나 정책 분야 연구소 같은 곳을 많이 찾았었다. 나는 슈퍼바이저로서 담당 점포를 관리하며 야근하고 주말 출근 하는 것은 납득하지 못 하지만 선거를 준비해야 해서, 전염병에 대비해서, 긴급 자연 재해 발생 때문에 야근을 하는 것은 납득 할 수 있었다. 저 일들이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그냥 내가 그렇게 생겨먹었다. 내 스스로 너무 하기 싫은 야근과 주말 출근을 할 수 있을 만큼 설득력이 있는 일들은 그냥 그런 분야였던거다. 


그래서 실패와 실패였던 취업 준비에 비하면 공무원 준비는 순탄했다. 나는 지금의 일에 대해서라면 야근도 주말출근도 수긍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왜 이것 때문에 여기서 이러고 있지?' 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뭐 그런데 이것도 내 '일'에 한해서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낀다면 또 이야기는 달라진다. 

겨우 어떻게 조직의 목표와 내 목표가 대강은 일치했건만, 사람때문에 또 다시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생각만해도 뻗치는 인간을 계속 보면서 사는게 평범한 사람이 지고 가야 할 대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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