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자신만의 방

가족과 함께 또 혼자, 그 사이 균형을 잃는 과정

by 반작
”여성에게는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가 필요하다“


나는 어리석은가 지혜로운가 하면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기에 언제나 경험해보고서야 잘못된 선택을 했음을 알게되고 무언갈 잃고 나서야 그의 가치를 깨닫는다.


20대 중반에 들어서고서 나에게 가장 큰 상실감을 준 환경의 변화는 나의 방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해 방의 갯수가 줄어들면서 동생과 방을 같이 쓰게 된 것이다.


동생과 나는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하기 때문에 언제나 나만의 있던 방이 없어진다는 아쉬움 외에는 사실 함께 방을 쓴다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은 없었다. 한 방 안에서도 서로 배려하며 개인 공간을 분리하면 되리라 생각했으니까.


우리는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지만 어쩌다 두 명이 동시에 외출을 하지 않는 날이나, 하루를 온전히 방해 없이 보내고 싶은 날엔 그것이 실현되기 어려웠다. 가족과 함께 산다는 것은 사실상 방문을 잠근다고 하더라도 쏟아지는 생활의 소리는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별 일이 없는 때에는 언제나 정오를 넘겨 일어나곤 하는 나도 아침의 달그락 거리는 부엌의 요리 소리, 샤워하는 소리, 일요일이면 돌아오는 아파트의 재활용 시간을 위하여 현관문을 나서는 소리.


떄로는 서로가 거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사실이 위안을 주기도 했지만,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온전히 사용하고 싶어하는 성향을 지닌 사람이었고 이 공간이 사라졌다는 것은 혼자 생각할 시간과 휴식할 시간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전보다 멀어진 곳으로 이사를 갔기에 다니던 학교까지 통학 시간은 편도 1시간 40분 이상으로 늘어났다. 나는 지하철 최단 거리를 무시하고 일부러 3시간 씩 걸려서 버스를 타고 돌아다녔다. 서울 중심에서 경기도 어딘가로 이어지는 길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머리 보다는 몸에 익혔다. 이 시간이 온전히 나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이자, 익명에 숨어서 마음껏 몽상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가족에게 미안한 점도 있었다. 내 아침 단 잠과 오후의 시간이 방해받는 부분이었다면 술과 약속을 지독히도 좋아하는 내 성향 때문에 그들의 새벽 시간을 괴롭게 하게 하곤 했다.


그러나 여러모로 독립이라는 선택지는 나에게 괄호 속에 숨겨져있었는데 수도권에 살면서 방을 새로 구하는 것은 낭비이지 않을까하는 우려와 경제적 수입이라고는 작고 비정기적인 개인 과외 수입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친구가 갑작스레 방 두 개짜리 집을 계약하게 되며 언제나 독립을 꿈꾸(기만 하)던 내게 룸메이트를 제안했고 그렇게 덜컥, 독립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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