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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협력분야에서 벌어지는 미-중 패권 경쟁

중국의 세계개발구상(GDI) 전략 분석

by 라이프파인

과거 국제개발협력은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돕는 인도주의적 활동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개발협력 분야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초강대국이 충돌하는 치열한 '전략 경쟁의 장'으로 변모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2021년 중국이 야심 차게 내놓은 '세계개발구상(Global Development Initiative, GDI)'이 있습니다.


오늘 분석할 논문, 하윤빈 교수의 논문 <개발에서의 미중 전략경쟁: 중국의 세계개발구상(GDI)>는 GDI가 기존 서구 중심의 기존 국제질서에 도전하고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개발도상국들을 지칭)'를 포섭하여 중국 중심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전략적 도구라고 주장합니다. 동시에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적 외교정책 또한 기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약화시키고 있어, 한국과 같은 중견국이 새로운 역할과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개발협력 분야'는 어떻게 미중 경쟁의 격전지가 되었나?


어떻게 인도주의의 장이 전략의 각축장으로 변모했을까요?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야 합니다.논문은 크게 세 가지 시대적 배경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개발의 안보화'입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가난과 불평등이 테러리즘이나 지역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가난한 나라에 학교를 짓고 병원을 세우는 일은 단순히 착한 일이 아니라, 자국의 안보를 지키는 중요한 활동이 되었습니다.


둘째는 '미국 주도 질서의 균열'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과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미국이 지켜오던 자유무역과 동맹의 가치가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전 세계가 따르던 명확한 규칙이 흐릿해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로 이 지점에서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됩니다. 군사력이나 경제력뿐만 아니라, "앞으로 세계는 어떤 규칙과 가치를 따라야 하는가?"를 두고 벌이는 '담론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바로 이 전쟁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수많은 개발도상국, 즉 '글로벌 사우스'의 마음을 얻는 쪽이 승기를 잡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개발 협력'입니다.




중국의 전략: 세계개발구상(GDI)의 내용과 특징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정확히 읽어낸 중국은 2021년, 시진핑 주석이 UN 총회에서 중국의 대(對) 글로벌 사우스 전략의 핵심 전략인 GDI(세계개발구상, Global Development Initiative)를 발표합니다.


GDI는 '발전이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주장하며 경제 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합니다. 즉, "일단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하자"입니다. GDI는 민주주의나 인권 같은 정치적 가치를 앞세우는 서구와 달리, 경제 성장을 통한 빈곤 퇴치를 최우선으로 내세웁니다. 이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하지만 경제 발전을 간절히 원하는 많은 개발도상국 독재자나 권위주의 정부에게 매우 매력적인 제안입니다.


또한 중국은 GDI를 UN의 공식 목표인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돕는 계획이라고 포장하며 'GDI 우호 그룹(Group of Friends of GDI)'을 결성하는 등 UN 무대를 적극 활용하여 국제적 정당성과 지지를 확보하려 합니다. 국제 사회의 공식 무대에서 GDI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우리는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돕고 있다"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전략은 스스로를 '글로벌 사우스의 리더'로 자리매김하는 것입니다. 중국은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개발도상국 출신이며, 서구의 간섭 없이도 이렇게 발전했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이를 통해 서구 선진국들을 '과거 식민 지배자' 프레임에 가두고, 개발도상국 간의 연대, 즉 '남남협력'을 강화하며 자연스럽게 그 중심에 서려고 합니다.




미국의 대응과 한계


논문은 중국의 공세에 대응하는 미국의 전략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미국은 반도체, AI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국들에게 대중국 수출 통제 동참을 강요하고,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onshoring)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이 그동안 지켜온 자유무역 질서를 스스로 훼손하는 모순적인 행동입니다.


미국은 미중 경쟁을 가치의 대결로 규정하지만,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이념보다 실질적인 경제 발전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더욱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보였던 '백신 민족주의'나,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항해 내놓은 '더 나은 세계 재건(B3W)' 구상이 구체적인 성과 없이 흐지부지된 모습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게 미국의 리더십과 약속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결론 및 한국에 대한 시사점


결론적으로 우리는 미국과 중국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기존 국제질서를 흔드는 '대전환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개발협력은 이제 새로운 방향과 철학을 정립해야 합니다.


첫째, '한국만의 개발협력 브랜드'를 강화해야 합니다. 우리는 원조를 받던 최빈국에서 원조를 주는 선진국으로 성장한 세계 유일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처럼 권위주의적이지도, 서구처럼 이상적이지도 않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함께 발전시킨 우리만의 성공 스토리"는 그 자체로 강력한 소프트파워입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수원국의 실정에 맞는 맞춤형 발전 모델을 전수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둘째, '선택과 집중'을 통한 전략적 효율성을 높여야 합니다. 중국의 막대한 자금력이나 미국의 광범위한 영향력과 정면으로 경쟁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우리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가진 분야, 예컨대 디지털 정부 시스템, 공공 보건 및 의료 인프라, 첨단 기술 기반의 직업 교육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 자원과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이는 '규모의 경제'가 아닌 '가치의 경제'로 승부하는 전략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치를 공유하는 중견국들과의 연대'를 강화해야 합니다. 호주, 캐나다, 북유럽 국가 등 우리와 비슷한 입장에 있는 국가들과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국제 무대에서 한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이는 미중 양자택일의 구도에서 벗어나, 국제질서의 안정과 다자주의를 지지하는 '제3의 목소리'를 형성하는 길입니다.




마치며,


최근 국제정세는 혼돈의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개발협력분야가 이제는 하나의 전략적인 각축장으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만의 철학과 전략으로 무장해야 할 때입니다.


이는 개발협력 실무자들에게도 과거의 관행을 넘어, 국제 정세를 읽는 전략적 시야와 통찰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함께 해 나가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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