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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협력, 양질의 일자리로?

by 라이프파인

여러분은 양질의 일자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개인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결정하는 것은 높은 연봉이나 안정성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비전과 기회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도 우수한 인재를 붙잡을 수 없으며 생태계는 결국 도태됩니다.

바로 이 관점에서 현재 한국 개발협력 생태계의 구조적 딜레마가 있습니다.



1. 문제 제기: '정부 주도'가 만든 '성장 정체'의 역설


현재 한국의 개발협력 생태계는 KOICA를 비롯한 정부가 사업 기획, 예산, 평가의 주도권을 가진 강력한 중앙집권적 구조입니다.

산업계, 학계, 시민사회 등은 정부가 제시한 과업지시서(RFP)에 맞춰 사업을 제안하고 수주하거나,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야만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등 사실상의 ‘용역 수행 파트너’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구조는 안정성을 보장하는 대신, 생태계 전체의 성장 잠재력을 옭아매는 부작용을 낳지요.

각 주체는 독자적인 비전으로 혁신적인 사업을 연구하기보다, 단기 프로젝트 수주를 위한 제안서 작성에 역량을 집중하게 됩니다.

그 결과, 산업계는 혁신 동력을, 학계는 비판적 연구 기능을, 시민사회는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하며, 결국 모든 주체가 정부라는 단일한 정점만 바라보게 되면서, 생태계 전체의 성장은 정부의 비전과 예산이라는 보이지 않는 천장에 가로막히는 ‘성장 없는 안정’이라는 역설에 빠지게 됩니다.



2. 현실 인정: 왜 '정부 주도'는 불가피한 선택인가

하지만 이러한 구조가 단지 효율성이나 관성 때문에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현실적인 필요성과 타당성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첫째, 공적개발원조(ODA)의 재원은 국민의 세금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이 예산이 국가의 외교 전략과 개발 목표에 맞춰 투명하고 책임감 있게 사용되도록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습니다. KOICA 중심의 구조는 사업의 파편화를 막고 국가 차원의 전략적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합니다.

둘째, 한국 개발협력 생태계의 역사는 길지 않습니다. 아직 많은 민간 기업과 시민사회가 자체 자본만으로 리스크가 큰 개발도상국에서 독자적인 사업을 발굴하고 지속할 역량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민간의 참여를 유도하고 생태계를 육성하는 ‘안전망’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현재의 의존적 구조는 ‘종속’이라기보다, 생태계가 성숙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3. 향후 방향: '통제'에서 '파트너십'으로 전환

결론적으로, 우리의 과제는 정부 주도 구조를 비판하며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기능은 살리되 한계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진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제와 책임’이라는 명분 아래 ‘성장과 자율성’이 희생되는 현재의 구조를, 양립 불가능한 가치가 아닌 함께 추구해야 할 목표로 재설정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전환의 방향은 정부의 역할을 ‘관리자’에서 ‘플랫폼 촉진자’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정부는 모든 것을 기획하고 지시하는 대신, 민간과 시민사회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제안하고 실행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플랫폼 역할을 강화하자는 것이지요.

물론 이미 코이카 프로그램 중에 기업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지원하는 CTS(혁신적 기술 프로그램)나 IBS(포용적 비즈니스 프로그램)와 같은 전략 공모형 사업들이 존재하고 시민사회 단체들의 전략형 제안 사업도 있지요.

제가 제안하는 것은 현장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방식의 비중과 철학을 대폭 확장하자는 것입니다. 정부가 기획하는 대신, 다양한 주체들이 정부라는 안전망 안에서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제안사항은, 사업의 성공 여부를 목표 달성률로만 평가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현재의 평가는 “약속한 산출물(Output)과 성과(Output)를 달성했는가?”를 묻는 감사의 성격이 강합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은 ‘실패’로 기록될까 두려워, 현장에서는 어려움을 드러내기보다 긍정적인 결과만을 보고하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량적 목표 달성률과 더불어 ‘성장의 척도’를 핵심 지표로 포함할 것을 제안합니다. 사업 과정에서 파트너 기관의 역량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어떤 새로운 지식과 교훈을 얻었는지, 생태계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평가의 중심에 두자는 것입니다. ‘성장의 척도’가 도입된다면, “혁신적 시도 끝에 얻은 의미 있는 실패” 역시 중요한 성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수행기관에 부담을 더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평가를 ‘학습과 컨설팅의 장’으로 만들어 현장의 압박감을 줄이고, 보이지 않는 노력을 인정하며, 더 솔직하고 창의적인 도전을 장려하는 안전망이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사례 연구, 심층 인터뷰, 학습 보고서 등 질적인 평가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마치며,

제가 오늘의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은,

정부의 변화와 함께, 다른 주체들도 ‘정부 의존’ 체질을 개선하려는 자구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산업계는 ODA를 넘어 임팩트 투자와 연계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학계와 시민사회는 정부 용역 외에 독자적인 연구와 펀딩 모델을 확보하여 자율성의 기반을 다져야 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양질의 일자리’는 건강한 생태계 안에서만 피어납니다.

정부가 안정적인 토대를 제공하고, 그 위에서 산업, 학계, 시민사회가 자유롭게 경쟁하고 협력하며 함께 성장할 때, 비로소 한국 개발협력 분야는 인재들이 모여드는 역동적인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관련하여 다양한 고견과 조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굉장히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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