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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홀릭 Apr 03. 2017

유럽으로 향한 이주여행,
시베리아횡단열차

     


사실 이번 여행은 우리가 북경에 살기 시작했던 시점에 계획되었다. 베이징 주재 라디오 방송국 기자로 근무하기 시작할 때부터 남편은 프랑스로의 귀향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가자고 나에게 제안했다.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을 가로지르는 열차를 타고 프랑스로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10대 시절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를 통해 러시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시작되었고 20대에는 레닌과 볼셰비키 혁명, 막심 고리키를 읽으며 러시아에 대한 친밀감은 커졌다. 언젠가 통일이 된다면 북한을 거쳐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숲을 가르며 유럽으로 향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비록 젊은 날 가졌던 동경과 희망이 희미해지고 아련한 향수로 남아 있다 하더라도  자작나무 숲의 시베리아를 가로지르는 기차 여행은 나에게 매혹적인 경험으로 다가왔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안에서 본 자작나무 숲


그런데 3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면서 여행에 대한 기대보다 현실적인 생각들이 앞섰다. 북경에서 파리로의 여행은 일종의 이사인 셈인데, 이사를 여행으로 대체할려니 은근히 귀찮게 느껴졌다. 나는 여행보다 이사라는데 방점을 찍었다. 이사인만큼 한국에서 공수해온 고추장, 된장 등 먹을거리를 파리로 다시 챙겨가야 하는데 여행을 갈 경우 포기해야 될 거 같았다. 2003년 프랑스로 떠난 후 매년 한국을 방문하고 다시 프랑스로 갈 때 난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다. 파리에서 구할 수 있었지만 엄마표 된장, 고추장, 김치가 더 소증 하니까. 그런데 여행이라고 하면 모든 짐을 줄일 수밖에 없을 테고 식품이 일차 삭제 대상이 될 건 뻔하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은 남편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 실행에 더 집중했다.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서서히 떨어지는 시점에 나는 임신을 했고 출산을 했다. 출산 후 나는 마음속으로 시베리아 횡단 여행을 포기했었다. 육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초보 엄마로서 갓난아기와 어떻게 장거리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내심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이번이 아니면 다시 시도해보기 어려울 철도 여행을 포기해야 된다는 생각에 조금 아쉽기도 했다. 

여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나의 생각과 반대로 한다고 결정한 일에 대해선 밀어붙이는 성격의 남편은 이 여행을 감행하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남편의 고집을 아는 터라 이에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그동안 자유롭게 살았으니 아빠가 된 마당에 무리한 여행을 감행하지 않겠지' 난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느 날 밤 테오를 재우고 우리 집에 머물고 계셨던 시부모님과 저녁식사 후 타로 게임을 하는 자리였다. 자연스럽게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대한 말이 오고 갔다. 그 자리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이 시부모님의 버킷리스트인걸 알게 되었다. 두 분이 동조하면서 갑자기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매사에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시아버지는 태블릿으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경유할 도시의 날씨부터 확인하기 시작했다. 쇠뿔 도단 김에 빼라고 시부모님과 남편은, 

 “언제 기차를 타면 좋을까, 여름에 바이칼 호수에 가면 모기가 많아서 안돼, 너무 늦어도 날씨가 추워서 힘들어” 

라며 가장 좋은 시기는 아마도 이번  봄이 어떻겠냐고 모종의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이들이 여행에 대한 공모를 하는 걸 보면서 난 독립군처럼 홀로 여행 반대를 주장했다,

“테오가 어려서 장시간 기차 여행은 힘들어요” 

그러 나이미 의기투합한 세 사람은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계속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도시에 내리고 혹시나 테오에게 문제가 생기면 바로 병원에 갈 거야”

곧이어 남편은 인터넷으로 경유 도시에 있는 외국인을 위한 병원이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은근히 나의 편이 될 것이라 기대했던 시어머니마저 나를 설득하셨다.

“괜찮아. 우린 스테판이 18개월 때 노르웨이로 한 달 동안 캠핑여행을 떠났어” 라며 걱정 많은 며느리를 안심시키기도 하셨다. 의기투합한 세 사람 앞에 여행 고사를 외치는 나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결국 난 소아과 의사에게 여행을 가도 되는지 물어보고 괜찮다고 하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겠라'고  답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여행이 실행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테오에게 무리가 갈 것이 확실해 다들 포기하겠지라고 안심했기 때문이다.


얼마 뒤 테오의 정기 검진을 위해 베이징에 있는 프랑스 소아과 의사를 찾아갔다. 테오는 또래 아기보다 큰 키와 몸무게로 잘 자라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봄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탈까 하는데 아기에게 무리가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의사는 된다, 안 된다라는 단호한 표현을 쓰지 않았다. 난 재차 '아기가 너무 어린데 위험하지 않을까요? 열이날 수도 있고 감기에 걸릴 수도 있을 텐데..'라고 물었다.

여의사는 의외의 답변을 했다.'지금 나이보다 오히려 2살, 3 살 때 더 위험하죠.애기들이 움직임이 많을 때 안전사고가 더 많으니까요. 반면 테오처럼 어린 아기들은 엄마 젖을 먹으니 이유식 문제도 없고.. 아직 움직이지 않고 안겨만 있으니 오히려 큰 사고 위험은 없어요.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이면 될 테고...'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스테판은 의사에 말에  여행을 가도 괜찮다라며 확신을 얻은 듯 의기양양했다. 의사가 가도 괜찮다는데, 난 어쩔 수 없이 여행을 가는데 동의하고 말았다. 늘 그렇듯 스스로 결정 내리지 못하니 타인의 결정에 따르는 나의 우유부단함에 발목이 잡힌 셈이었다.


시부모님이 베이징을 떠나기 전 시베리아 횡단 열차 전문 여행사를 물색했다. 한국이나 프랑스보다 출발지인 베이징에서 알아보는 게 나을 듯해서이다. 우리는 인터넷으로 여행사를 찾아 토요일 오후 사무실에 갔다. 서울의 이태원이라고 할 수 있는 싼리툰의 허름한 연립주택 안에 여행사가 있었다. 몽키 시린 이라는 여행사 사무실 옆에는 북한 전문  여행사인 고려 여행사도 보였다. 우리는 여행사를 통해 기차표 발권과 호텔 예약, 초청장을 받기로 했다. 사실 남편이나 시부모님은 자유 여행을 선호했지만 까다로운 러시아 비자 발급을 위해서는 여행사를 통하는 게 낫다고 했다. 특히 프랑스와 러시아의 원만하지 않은  외교 관계로 프랑스 인들의 러시아 비자 발급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 때문에도 여행사를 통한 초청장이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한국인의 경우 2014년부터 러시아와 비자 면책 협정이 체결되어 덕분에 무비자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와 테오는 러시아 여행에 큰 문제가 없는 셈이다.'한국인이라는 게 좋을 때도 있구나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여행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은 나로서는 좋아해야 할지 말지 좀 난감했다. 여행사를 방문한 후 며칠 뒤 시부모님은 베이징에서의 재회를 약속하며 프랑스로 떠나셨다. 우리 역시 3년 반 동안의 베이징 생활을 청산하고 내 고향인 부산을 향했다. 테오가 태어난 지 2개월이 조금 지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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