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3일의 수습일기
공소권 없음. 이 다섯 글자의 무력함을 또 한 번 느꼈다. 피의자가 사망하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된다. 오늘 그렇게 끝난 사건이 있었다. 바로 직원 상습 폭행 혐의로 고소당한 마커그룹 송명빈 대표 얘기다. 오늘 서울남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예정이었던 그는 자택 아파트에서 추락해 숨진 채 발견됐다.
송씨는 직원 A씨에게 지난해 11월 고소당했고, 이후 송씨가 A씨를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과거 아내와 장모를 폭행하고 흉기로 협박해 처벌 받은 전력, 자택으로 직원을 불러 폭행한 일 등이 알려져 논란이 커지기도 했다. 오늘 송씨 자택 주변에서 만난 주민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평소 송씨가 자주 화를 냈고, 주차 시비 등이 붙는 일도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말린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송 대표 일은 곧 잊힐 것이다. 책임을 물을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비슷한 무력함을 느낀 적이 있다. 성폭력 논란이 있었던 배우 조민기와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았던 노회찬 전 의원이 송씨와 비슷한 선택을 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물론 이들 중 누군가는 정말로 억울했을 수도 있고, 죽음으로라도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잘못을 했는지, 결백한지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됐기 때문이다.
“왜 피의자가 죽었다고 사건을 끝내야 해요? 계속 수사하면 안 돼요?” 기자 지망생이던 시절 현직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낭비라는 답이 돌아왔던 것 같다. 죽은 사람 사건을 계속 진행해도 죄를 물을 수 없는데,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냐고. 물론 경제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력함이 사라지진 않는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슬픔을 이 여섯 단어로 표현했던 것처럼, 공소권 없음은 내게 무력함을 표현하는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