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4일의 수습일기
경찰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생각했다. 교통조사계를 보면서다. 아무리 조용한 경찰서라도 교통조사계엔 그래도 꽤나 ‘손님’이 찾아온다. 물론 기삿거리는 극히 드물다. 접촉사고, 주차 뺑소니, 범칙금 납부처럼 작은 일들이 훨씬 많다. 경찰은 차가 살짝 긁혔단 이유로 CCTV 몇십개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겉보기엔 멀쩡한데도 부딪혔다고 주장하는 민원인들의 얘기도 들어야 한다. 경찰이 보험회사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굳이 이런 일로 경찰서까지 와야 하는 건가. 교조계를 가면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알고보니 내 생각이 틀렸다. 우리나라는 교통사고 발생시 경찰 신고가 20%에도 못 미치는 나라였다. 더 작은 일이라도 경찰서를 오는 게 맞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경찰이 아닌 보험회사 직원이 출동해 과실을 따지는 일이 오히려 일반적이지 않다고 한다. 동작경찰서 교통조사계 임OO 팀장에 따르면 1982년 교통사고특례법이 생기고 나서 이런 현상이 생겼다고 한다. 교특법에 따라 종합보험에 가입한 경우 공소권 없음 처리되기 때문에 사고 처리가 훨씬 간편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특법이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사고처리가 편해지다보니 운전자들에게 교통 안전 불감증과 도덕적 해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교특법 폐지 주장의 근거이기도 하다. 한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계 어느나라에도 이런 법은 없다”며 “형법상 과실범인 교통사고를 지나치게 가볍게 취급한다”고 했다. 윤창호법과 관련해서도 교특법 폐지 의견이 나왔다. 음주운전에도 양형 기준이 미미한 교특법 영향을 받을 수 있어서다.
경찰은 당연히 보험사 직원이 아니다. 하지만 교통사고 과실을 가리는 건 본래 경찰의 일이다. 그래서인가보다. 내가 “아니 뭐 이런 걸로 경찰서까지 와요”라고 말했을 때 교조계 경찰들이 아무말도 하지 않았던 건. 교특법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편리함보다는 안전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