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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쿠나 Nov 13. 2023

피의사실공표죄, 만능은 아니다

2019년 3월 15일의 수습일기

“일본은 마스크를 경찰이 쓰는데, 우리나라는 피의자가 쓰지.” 서울관악서 A지구대장 B경정은 3년 동안 일본에서 주재관 생활을 했다면서 말했다. B경정에 따르면 일본에는 피의사실공표죄가 없다. 따라서 경찰이 다루는 모든 범죄 피의자 신상이 전부 언론에 공개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피의자의 인격권보다 국민의 알 권리, 뭐가 더 중요할까.


 한국은 피의자의 인격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검경 등 수사기관이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 제기 전에 공표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피의자의 인격권이나 국가기관의 범죄수사권 보호 등이 근거가 된다. 뻔질나게 경찰서를 드나드는 수습에게 경찰이 쉽게 사건을 알려주지 않는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피의사실공표죄에도 예외 조항이 있다. 실제로 재판에 넘겨지는 경우도 드물다고 한다. 피의사실공표죄에 대해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피의자의 인격권과 국민의 알 권리. 당연히 경중을 가리기 어려운 가치다. 하지만 그 두 가지 사이에서 잊힌 가치가 있다. 바로 경찰의 인권이다. 경찰은 자기 일을 하는 것 뿐인데 언론에 얼굴이 노출돼야 하는 걸까. 한 경찰행정 전문가는 “한국이 일부 인권단체 등의 질책이나 여론을 지나치게 민감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피의자에게 마스크나 모자 등을 제공해 적극적으로 인격권을 보호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무리한 수사로 인권을 침해했던 과거의 경찰도 잘못됐지만, 피의자 인권을 무조건 우선하는 지금도 잘못된 게 아닐까. B경정은 일본에서 범죄를 저질러 잡혀온 한국인들이 왜 자기 신상이 노출됐냐며 항의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고 한다. 그럴 땐 이미 당신들은 얼굴까지 다 공개됐다고 말해줬다고도 했다. 피의자의 인권은 보호돼야 하지만, 절대적으로 우선해야 할 가치는 아니다. 권리를 주장하고 싶다면 일단 착하게 살자. 억울한 일부를 제외한 피의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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