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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쿠나 Nov 13. 2023

초원이는 왜 그랬을까

2019년 3월 18일의 수습일기

 영화 <말아톤>에는 주인공 발달장애인 초원이가 얼룩무늬 치마를 입은 여자의 엉덩이를 만지는 장면이 나온다. 초원이는 성적 의도 없이 얼룩말을 좋아하기 때문에 만졌지만, 여자가 느끼기엔 성추행이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초원이는 성범죄 가해자가 된다.


 “왜요?” 발달장애인의 성범죄 관련 취재를 하다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경찰청, 검찰청, 법무부와 여러 장애인 관련 단체에 전화를 걸어 발달장애인의 성범죄 관련 통계가 있는지를 물었다. 피해자도 아닌 가해자 통계를 묻는 내가 이상했는지 많은 사람들이 ‘왜’냐고 되물었다. 그럴 때마다 가해자 입장의 발달장애인을 비난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돕기 위한 의도라는 걸 설명해야 했다.


 “발달장애인만요?” 어떤 정부 기관도 발달장애인 통계를 따로 가지고 있진 않다. 법무부가 매년 발간하는 <범죄백서>에도 정신장애범죄만 따로 분류돼있다. 여성가족부가 2012년부터 진행해 온 ‘장애아동·청소년 성인권교육’ 역시 장애 유형을 나누지 않고 장애아동·청소년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신체적 장애가 있든, 정신적 장애가 있든 모두 같은 교육을 받는다는 얘기다. 당연히 교육을 이수한 발달장애인이 몇 명인지 따로 파악할 수도 없다.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요?” 장애인이라는 단어는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잘 어울리는 걸까. 발달장애인 관련 단체에 전화를 걸어도 마찬가지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는 담당하지 않는다”며 단칼에 내 말을 잘라버리는 단체도 있었다. 발달장애인이 성폭력 가해자가 됐을 때, 발달장애인이라고 특별히 구제받을 절차나 방법은 없다. 영화 <도가니>가 나오고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보호장치는 늘어났지만, 가해자는 여전히 비장애인처럼 알아서 변호해야 한다. 


 발달장애인 성범죄 가해자는 이런 의문에 쌓여 있다. 아무도 그들이 왜 가해자가 됐는지, 그들의 어떤 성향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묻지 않는다. 그 질문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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