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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쿠나 Jun 29. 2024

없는 사람에게만 얄짤없는 세상

2019년 3월 25일의 수습일기

“아직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니까…” 25일 서울 종암경찰서에서 만난 50대 A씨는 깡통에 불을 피웠다는 이유로 형사과에서 조사를 받았다. 건설 현장 노동자인 A씨는 지난 주 일을 하다 추위를 견디지 못해 깡통에 불을 붙였다. 정말 몸을 녹일 요량으로 작게 피워 주변으로 불이 옮겨 붙은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이웃 주민의 신고로 적발됐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A씨는 “없는 사람들은 늘 이렇다”며 허허 웃었다.


 세상은 ‘없는 사람들’에게 얄짤없게 군다. 일터부터가 열악하다. A씨 같은 건설 현장 노동자들은 불을 피우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대안이 없다고 한다. 핫팩을 쓰지 그랬냐는 내 말에는 “어떻게 핫팩 들고다니면서 일하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세먼지도 마찬가지다. 미세먼지가 한참 심했던 때 건설현장을 찾았던 동기도 그들이 마스크를 챙겨 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따뜻한 공사장, 미세먼지 없는 공사장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쉴 시간이라도 제대로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폭염 가이드라인이 마련된 것과 달리 한파와 관련해서는 아직 법적 가이드라인이 없다. 물론 가이드라인이 있다고 해도 잘 지켜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지금도 안전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많지만 건설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계속 발생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다음주면 딸이 결혼을 하는데 감옥에 가게 생겼다”며 농담을 하는 A씨의 얘길 듣고 오늘 아침 종로2가파출소에서 들었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몇십 년 전 기자 한 명이 술에 취해 의경을 때렸는데, 유치장에 가뒀더니 바로 서장 전화가 와서 풀어줬단 얘기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웃어 넘겼지만 최근 경찰 유착 의혹을 보면 지금이라고 아주 없는 일도 아니겠다 싶다. 돈이든 권력이든 세상은 있는 사람에게만 관대해왔다. 언젠가 없는 사람이든, 있는 사람이든 평등해질 세상이 올까. 죄를 저질렀다면 없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있는 사람에게도 얄짤 없는 세상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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