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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쿠나 Jul 17. 2024

눈가를 보라색으로 만든 선배

2019년 3월 31일의 수습일기

 31일 서울 종암경찰서에서 처음 본 A씨의 한쪽 눈가는 새까맣게 멍이 들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누군가에게 맞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A씨와 함께 종암서 형사과를 찾은 A씨의 형은 “동생이 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5분 여만에 형사과를 나온 그들을 따라가 무슨 일인지 물었다. A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대학원 연구실 선배에게 맞았다”며 “아들이 OO대학교에 다니는데, 관할이 성북경찰서라고 해 그곳에서 접수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성북서로 따라가 조사를 마친 그들을 다시 만났지만, A씨는 대답을 피했다. A씨 어머니를 통해 이미 고소를 마쳤고, 개인적으로 생긴 일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A씨는 위계·위력에 의한 폭행을 당한 셈이다. 같은 연구실에서 일하는 선배가 후배를 때렸다면, 후배 입장에서 똑같이 맞설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A씨가 이공계 랩실 등에 있는 대학원생이라면 더욱 그럴 공산이 크다. 하루종일 같은 공간에 있고, 그 안에서 지시를 받는 상황일 테니 말이다.


 A씨를 보며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이 떠올랐다. 지난 2월1일 안 전 충남지사는 2심에서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업무상 위력에 대해 반드시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유형적 위력일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안 전 지사의 사회적 지위 자체가 비서였던 피해자에겐 충분히 ‘무형적 위력’이라는 것이다.


 A씨 역시 선배라는 지위 자체의 무형적 위력에 의해 당한 것은 아닐까. 아직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A씨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확보해 둔 상태다. 성북서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A씨는 말을 하고 싶어하는 어머니에게 “대답하지 말라”고 했다. 어쩌면 A씨가 사건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조차 무형적 위력에 의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말하던 그의 한쪽 눈가는 어느새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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