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4일의 수습일기
“달이 빛난다고 말해주지 말고, 깨진 유리 조각 위에서 반짝이는 한 줄기 빛을 보여줘라.”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는 이렇게 말했다. 이와 유사한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Show, Don’t tell)’라는 구절은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쓰고 나서 한 말로도 유명하다. 비단 문학계에서만 통하는 얘기는 아니다. 미국 컬럼비아대 뉴스 보도 교재에 실리면서 언론계에서도 하나의 글쓰기 지침이 됐다.
4일 오후 한국언론진흥재단 수습기자 기본교육에 온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도 "Show, Don’t tell”을 언급했다. 그는 “설명하지 말고 묘사를 하라”고 했다. 실제로 박 교수가 좋은 사례로 보여준 기사들을 읽으면 현장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졌다. 리퍼트 대사 피습기사 속 “그가 앉았던 자리의 흰색 테이블보와 식기에는 굵은 핏방울이 여기저기 뿌려져 있었다”는 문장을 읽을 때는 색의 대조가 확연히 느껴져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게 됐다.
5주 동안 마와리를 돌면서 설명보다 묘사가 더 어렵다는 걸 느낀 적이 있다. 현장 스케치를 할 때다. 빠르게 스케치를 하면서도 현장 분위기를 전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3월29일 불법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한 혐의로 가수 정준영이 검찰에 송치될 때도 그랬다. 정씨가 경찰서 문을 나와 호송차에 타기까지 걸린 시간은 1분도 안 됐다. 찰나같은 시간 동안 그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표정은 어땠는지 등을 파악해 취재메모로 표현하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박 교수가 소개한 한겨레 안수찬 기자의 책에는 “세상 모든 독자들은 대충 읽는다. 세상 모든 필자는 독자가 자신의 글을 몰입해서 읽어주길 원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가 둘 사이의 간극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도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일이다. 박 교수는 “좋은 묘사를 하려면 세밀한 관찰과 뛰어난 감각적 표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늘 강의를 통해 앞으로 “Show, Don’t tell”을 실천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