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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쿠나 Apr 28. 2021

‘빽’ 없는 사람들의 ‘빽’

2019년 2월 27일의 수습일기

“집안에 의사가 있었으면 이런 일은 안 당했을 겁니다.” 택시비를 내지 않는 승객을 데리고 동작경찰서에 온 택시기사 A씨의 말이다. 들어보니 택시 무임승차 때문이 아니었다. 이틀 전 사망한 A씨의 장모 이야기였다. A씨는 장모가 의료사고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장모가 수술 후 하루만에 숨을 거뒀는데, 병원에 의료기록을 요구하자 차트 작성을 아직 하지 않았다는 말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바로 미국으로 해외 연수를 떠났다고도 했다. 동네병원에서 뇌출혈 진단을 받고 큰 병원을 찾았는데, 수술 후처리가 잘못됐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A씨는 이 모든 일이 자신이 ‘빽’이 없어서라고 말했다.


 어쩌면 A씨의 말은 틀리지 않았을지 모른다. A씨처럼 ‘빽’ 없는 이들의 의료사고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의료사고가 피해를 증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이 전문적인 의료지식을 갖기도, 치료 행위와 피해 사실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 가수 고(故) 신해철, 배우 한예슬처럼 유명인들의 의료사고는 조금 달랐다. 신해철 집도의는 징역 1년을 받았다. 한예슬 의료사고의 경우 해당 병원은 바로 과실을 인정하고 대책과 입장문을 내놨다.


 얼마 전 재판 결과가 나온 이대목동병원 사건은 조금 달랐다. 2017년 12월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 7명이 감염질환으로 사망했고, 병원측에서도 책임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결국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언론 보도로 큰 화제가 됐는데도 병원 책임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이렇게 기자 분이랑 말해보는 건 처음이에요.” 인터넷 중고물품 거래 카페에서 사기를 당해 동작경찰서를 찾은 B씨에게 오늘 들은 말이다. 나와 얘기를 하면 마치 사건이 해결되기라도 할 것처럼, 내가 자신의 ‘빽’이라도 된 것처럼 들떠 있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과연 나는, 언론은 ‘빽’ 없는 사람들의 ‘빽’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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