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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쿠나 Jul 07. 2021

들어야 하는 이야기

2019년 3월 5일의 수습일기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겠노라 당당히 외쳤던 때가 있다. 사회가 들어주지 않는 소외된 목소리를 듣고 세상에 알리겠다고. 그래서 기자를 꿈꾼다고 말했다. 어느 자기소개선가에선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고 싶다”는 둥의 문장을 썼던 것 같다. 그런 기자 지망생에게 한참 선배 기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좋은 말인데, 기자가 정말 약자의 목소리만 들어? 정치인은?”


 아직 수습이지만 이름 뒤에 기자라는 단어를 달아보고 나니 조금 알 것 같다. 기자는 약자의 목소리만 듣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 경찰서에 오는 민원인들은 강자라기보단 약자에 가깝다. 종일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좋은 상담사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좋은 기자가 될 수는 없다. 꼭 들어야 하는 이야기, 즉 기자가 듣고 사회에 알려야 할 이야기를 구분하는 것도 기자의 능력이다.


 5일 휠체어를 타고 동작경찰서를 찾아 온 황OO씨 이야기는 어떨까. 지체장애 1급 장애인 황씨는 지난 1월 교통사고를 냈다. 보름 간 입원을 하고, 차는 폐차됐지만 본인 과실이라 보상받을 길도 없었다. 이런 황씨에게 택시기사 이OO씨가 300만원을 줬다. 황씨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교통정리 봉사를 하다 사고를 목격한 이씨가 그의 사연을 듣고 선행을 베푼 것이다.


 황씨는 이런 이씨 얘기를 알리고 싶어 경찰에게 “기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전날 불편한 몸으로 목발을 짚고 지하에 있는 기자실을 찾아갔지만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황씨는 꼭 이씨의 선행을 알리고 싶다고, 어떻게든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고 거듭 말했다. 다른 민원인들이 본인을 위해 얘길 좀 들어보라는 것과 달리 황씨는 자기 자신이 아닌 이씨를 위해 기자를 찾았다.


 ‘각박한 세상’이라고들 한다. 황씨와 얘기를 나누면서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싶었다. 아직 구분하는 능력이 부족한 수습이지만, 이런 얘기가 조금이나마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줄 수 있다면 들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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