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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ie Apr 01. 2024

공지에 좋아요를 누를 수 있다는 것

Slack과 경영참여

카카오에 있을 때 아지트라는 업무 툴을 썼다. 아지트에는 모든 글에 엄지가 위로 올라간 따봉과 아래로 내려간 따봉을 클릭할 수 있었다. 클릭 수가 숫자로 보이고 눌러보면 누가 따봉을 클릭했는지 이름이 나열된다. 모두 이걸 좋아요와 싫어요라고 불렀다. 나는 읽은 글에는 대체로 좋아요를 눌렀다. 나에게는 좋아요가 곧 봤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간혹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의 글에는 싫어요를 누를 때도 있었다. 


때때로 사람들은 자기 글에 '싫어요'가 눌리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싫어요를 누른 사람은 왜 싫어요를 눌렀는지 의견을 남겨주기도 했다. 남기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내 글에 싫어요를 누른 이 사람은 누구지? 왜 눌렀지? 이런 이유를 한참을 궁금해하기도 했다. 나는 카카오와 다음 합병 직전 호칭 체계를 개편한다는 공지를 카카오에 올린 담당자였다. 당시 다음에서는 한글이름 뒤에 '님'을 붙인 호칭을 쓰고 있었고, 카카오는 영어 이름을 아이디로 쓰고 있었다. 다음 재직자들은 영어 호칭을 만들어야 했고, 카카오 재직자는 자신과 똑같은 호칭을 쓰는 사람이 생길 수 있으니 이름 뒤에 확장자를 붙여서 유니크한 아이디를 만들어야 했다. 양쪽 모두 이 조치를 싫어했다. 내 공지에는 백 개 정도의 싫어요가 눌렸다. 


그 당시 두 회사가 한 조직이 되는 과정이라서 합병 전 정보가 비대칭적으로 공유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합병추진위원회는 동시에 동일한 정보만을 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싫어요 수가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왜 싫은지가 댓글로 달리고 있는데도 나는 해명 댓글을 달 수가 없었다. 내가 아무 댓글을 달지 않자 사람들이 카톡도 오고 전화도 왔다. 연락이 온 사람들에게 댓글을 달 수 없는 사정을 설명했다. 잠들기 직전까지 계속 하나씩 늘고 있는 싫어요 숫자를 폰으로 보다가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싫어요에 대한 짜릿한 추억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지에 좋아요와 싫어요를 누를 수 있고, 댓글을 달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소통이다. 사회가 민주적으로 변해온 것처럼 사내 환경도 민주적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 사내 공지는 경영진의 의사결정 사항이 전달되는 통로이기도 하다. 경영진 결정에 대해 클릭으로 의견을 남길 수 있고, 추가로 개진하고 싶은 이야기는 댓글로 달 수 있다는 것은 구성원이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공지사항에 싫어요가 눌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워하는 다른 회사 사람들을 많이 봤다. 


이제는 많은 스타트업에서 슬랙을 쓴다. 슬랙은 글에 대한 반응을 더 자유롭게 열어둔다. 토하는 얼굴, 뿔난 얼굴, 돼지, 토끼, 사과, 하트 등등 모든 이모지를 반응으로 쓸 수 있다. 우리 회사에는 팀원들 얼굴 사진을 따거나 인터넷 밈을 편집해서 만든 이모지도 많다. 공지사항에 옵션을 다섯개 올려놓고 1번부터 5번 숫자 이모지를 넣어서 투표를 받기도 하고, 다양해진 이모지 덕분에 더 쉽게 소통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도 늘어났다. 이제 반응이 없는 슬랙은 상상할 수도 없다. 


인사담당자 입장에서 공지사항을 썼는데 싫다는 이모지가 눌릴 수도 있고 반대 의견이 댓글로 달릴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부담이다. 또 아무런 권한이 없을 때는 댓글 대응하기가 무척 어려워진다. 반대로 소통이 활발해질수록 실무자의 권한 범위가 더 잘 드러나고, 이로 인해서 권한 위임을 더 받아낼 수 있는 환경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또 인사담당자의 업무가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기 때문에 활발한 반응은 업무 목적을 달성하는 좋은 정보가 될 수 있다. 자연스럽게 경영 참여가 일어나는 슬랙 같은 툴을 사용하고 있다면 조직적으로 매우 진화된 형태의 환경에서 인사업무를 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잘 활용해서 전문성을 키워나갈 수 있다. 


퇴사 때 캡쳐한 아지트에 내가 작성한 글 수 12,512개 / 사내 홍보용으로 다크나이트 합성해서 포스터 만든적이 있는데 이 사진을 오랫동안 내 사내용 프로필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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