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를 AI로 작성하고 있었는데 항목에 번호를 잘 못 붙이는 오류가 반복되었다. 번호 잘 못 붙였잖아 다시 봐봐. 그래도 1. 2. 3. 5. 5. 이런 식으로 번호를 붙였다. 아니 다시 보라니까? 숫자 순서대로 다시 붙이라니까?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있었다. AI한테 명령하면서 화를 내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이 있을까. 사람처럼 대답하는 물건에게 생명이 있는 것 취급을 하고 있었다.
한편 그런 면에서 AI가 편하다. 아무 말이나 해도 되니까. 바보야 다시 봐, 그런 말도 서슴없이 했다. 그런데 그게 과연 나한테 도움이 될까? 언어는 습관이다. 사람한테는 막말할 수 없는데 AI에게는 일 못하면 막 말해도 돼서 편해, 그렇게 생각하니 한편 우스꽝스럽다. 물건에 화를 내서 무엇할 것이며, 막말하는 습관만 나에게 남을 일 아닌가.
지인 중에서는 AI에게 명령할 때 존댓말을 하고 AI가 뭔가 해주면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친구가 AI랑 대화한 내용을 보면 그것도 그것대로 웃기다. 아니 쓸데없이 거기다 고맙다는 말은 왜 해? 그 친구는 기계가 사람의 언어를 보고 학습을 할 것이기 때문에 예의 바르게 대한다고 했다. 아니 얘는 오픈 AI 직원도 아니고 남의 회사 기계 가르치는데 왜 본인의 에너지를 쓰는가...
반면 남편은 고맙다고 까지 하지는 않지만 AI랑 대화할 때 존댓말을 쓴다. "이러이러한 버그가 있는데 고쳐주세요."라고 정중하게 작성한 문장을 모니터 뒤에서 보고 귀여워서 빵 터지고 말았다. 남편은 누구에게도 반말을 잘하지 않고 심지어 나에게도 존댓말을 쓰는데, 그저 반말을 쓰는 것이 어색해서 AI에게도 존댓말을 쓴다고 한다.
최근 무례한 프롬프트가 정중한 프롬프트 보다 더 좋은 성능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이것은 언어가 영어인 경우의 예시다. please나 kindly 같은 정중현 표현이 명령어의 직접성을 낮추기 때문에 불분명한 해석의 여지가 생겨서 그렇다고 한다. 한국어로는 어떨지도 궁금하다. 만약 반말이 AI의 성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반말을 쓸 것이다. 반말만 들으면서 만들어지는 AI가 정중한 표현을 잘할 수 있을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반말이든 존댓말이든 AI가 똑같이 잘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존댓말을 하는 언어습관을 AI 성능 때문에 바꿔야 한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곤란한 일이다. 또 예쁜 말하는 습관을 간신히 들여놨는데 기계한테 막말하다가 그 말버릇이 그대로 남아버리면 그것도 슬픈 일이다. 앞으로는 AI가 사람 기준으로 간단한 일을 좀 못한다고 해서 바보라고 하지는 말아야지. 기계와 대화하는데도 스스로를 수양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니 현대인의 생활은 참 다이내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