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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준 Jun 10. 2018

#5 창문 너머 무얼 보았던 걸까

할아버지는 미동도 않은 채 창문을 바라봤다.

#5 창문 너머 무얼 보았던 걸까

 

“…무얼 보고 계시는 걸까요?”
“글쎄요. 며칠 전부터 자꾸 저렇게 계시는데 말씀이 없으셔서.”
 
목소리가 작았던 걸까, 아니면 대꾸하기 싫었던 걸까. 평소보다 조금 더 소리를 키웠음에도 미동 하나 없으셨다. 조그마한 창문에 고정된 시선.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지만 창문 너머엔 평소와 다름없는 풍경이었다. 칙칙한 병원 건물과 사이사이 끼워져 있는 나무들, 그리고 미세먼지는 ‘나쁨’이라 표시되었음에도 푸르른 하늘. 오늘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평소와 달랐다. 딱 3일이었다. 평소에 갑갑한 게 싫어 병동을 자주 돌아다녔고, 할 말이 많아 봉사자를 계속해 붙잡던 할아버지가 변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저번과 같은 반가움을 기대하며 찾아온 게 무안할 만큼 침묵은 길었다. 
 
‘사람이 이렇게나 갑자기 바뀔 수 있나?’
‘흔히들 죽을 때가 되면 사람이 변한다는데..’ 
 
재수 없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스쳤다. 우리가 쉽게 쓰는 표현이 이런 상황에서 기인했나 싶었다.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변화를 어떻게든 이해하고자 애쓰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던가. 내게 있어 할아버지의 변화는 이해의 범주를 넘어섰고, 그런 내가 그나마 납득할 수 있는 해석은 죽을 때가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이 자리에 더 있어봤자 왜 이리 바뀌셨는지 알아낼 순 없겠지그래서 조용히 보호자와 눈인사를 한 후자원봉사실로 돌아갔다. 자원봉사실로 가는 동안 마주치는 환자들. 호스피스 병동이 주는 약간의 느긋함이 환자들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통증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환자가 내비치는 짜증이 확연히 감소하니 느긋함이 풍길만도 하다. 다른 곳에서 그렇게 성질내던 사람도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얌전하다 말하는 게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변하신 걸까. 궁금한 마음에 발걸음을 서둘러 옮겼다. 
 
그분화요일부터 그러셨다는데요?”
화요일이요?”
보니까 그렇게 적혀있네요.”
제가 월요일에 뵈었을 때만 해도 저러지 않으셨는데..”
 
정정해야만 했다. 3일은커녕 단 하루 만에 할아버지는 변했다하루누군가에겐 고작 하루인 그 시간동안 할아버지는 왜 이리 변하셨을까머리를 싸매도 알 수가 없었다괜히 사서 고생하는가 싶어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았다내가 하는 고민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어제와 같은 풍경이 창문 너머에 자리했다내가 보는 풍경은 이럴진대할아버지는 대체 무얼 보고 계시는 걸까내가 보지 못한 다른 게 창문 너머 있는 걸까.
생각이 날 듯 말 듯간질간질한 무언가가 머릿속을 헝클었다그 와중에도 어쩌면..’은 계속해 튀어나왔다서른 살 철부지의 고민은 만약과 어쩌면의 꼬리물기처럼 계속되었고 시간은 그에 맞춰 걸음을 옮겼다
 
만약 나처럼 일상이라고 부르는 이 풍경을 보고 있다면어쩌면 할아버지는 그 일상 때문에 말문을 닫은 게 아닐까.” 
 
나와 같은 걸 보고 있지만 나와 다른 반응을 보인다면결국 일상에서 답을 찾아야겠지 싶었다창문 너머 보이는 일상이 변화하는 내 자신과는 너무도 달라 계속해 쳐다보셨을 수도 있다아니면, ‘일상이라는 풍경을 통해 기억 저편에 자리한 또 다른 일상을 꺼내보고 계신 걸지도 모르고그 외에도 별별 추측이 머릿속을 잠식하기 시작했다3자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문제

대체 할아버지는 창문 너머 무엇을 보고 계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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