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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준 Nov 04. 2016

[죽음]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 좋은 죽음(Good Death)을 위해 권하는 도서 -





저자 : 김여환 // 출판사 : 청림출판




1. 책에 대한 전반적 평가


참신함 : ★★★★★★★☆ (7.5점)
상세함 : ★★★★★★★ (7점)
난이도 : ★★ (2점)
희소성 : ★★ (2점)
디자인 : ★★★★★★ (6점)



<전반적 평가>


읽기 쉬운, 그러면서도 호스피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 이미 여러 권의 호스피스 관련 서적이 있기에 참신함에선 부족할 수 있으나 호스피스 의사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확실하게 전달했다.

책은 구하는 데 별로 어려움이 없어 읽고자 마음만 먹으면 읽을 수 있고 책의 전반적 디자인은 정겨운 느낌이 강해 읽다 보면 눈이 편안하다. 호스피스에 관심이 있거나 정서적 위로나 변화를 원하는 이라면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바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2. 저자에 관하여

    

저자 : 김여환

대구의료원 평온관에서 암환자의 고통을 함께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센터장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  

의과대학에 다니던 중 결혼을 하면서 공부를 중단했던 그녀는 졸업 후 13년, 서른아홉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가정의학과 수련 과정 중 암성통증(암 환자가 겪는 통증)으로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하는 환자를 보며 호스피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국립암센터에서 호스피스 고위 과정을 수료, 2008년부터 지금까지 대구의료원 평온관에서 호스피스 의사로 일하고 있다. 의학박사나 가정의학과 전문의 등의 의학 지식보다 13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아온 시간이 호스피스 활동에 더 도움이 된다는 그녀는 죽음 앞에서도 환한 웃음을 짓는 호스피스 환자들의 모습을 담아 사진 전시회를 여는가 하면, 항암 요리를 만들어 환자의 가족들에게 선사하기도 하는 등 무채색의 호스피스 병동을 ‘컬러풀 호스피스’ 병동으로 바꾸어가고 있다.  

5년 동안 800여 명의 환자에게 임종 선언을 해오면서도 여전히 죽음에 담담해질 수 없다고 말하는 그녀는, 그러나 불편하더라도 삶을 완성하는 마지막 순간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 ‘죽음’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출처 : Yes24

                                                                        


책에서 보여지는 저자는 소명의식을 갖고 이 길에 들어선 사람이기보단 '무언가 작은 계기'로 이 길에 들어선 이다. 그리고 이 책에선 그 작은 계기가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각각의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가 살면서 놓치고 있었던 '죽음'이란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끔 도와준다. 개인적으로 이 분을 한 번은 만나뵙고, 이야기 나누고 싶다. 가벼운 담소라도 나누며 이야기를 한다면 이제껏 내가 놓쳐왔던 혹은 가볍게 여겼던 가치가 실은 무척 중요한 가치임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3. 인상깊은 혹은 매력적인 구절




지금이 어려우면
마지막부터 시작하세요.




시작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리고 신난다. 하지만 그만큼의 부담도 있다. 첫 단추를 잘 꿰고 싶은 마음에 말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이렇게 시작하는 게 맞는 걸까? 제대로 된 선택일까?" 그러한 고민은 그 끝에서 얻게 될 가치의 무게에 따라 더욱 커지기도 한다. 그렇게 고민이 된다면, 가끔은 뒤에서부터 생각해보면 어떨까? 


퍼즐 조각 하나를 들고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땐
'뒤에 있는, 이미 완성된 그림'을 보는 게 큰 도움이 되는 법이다.









죽음의 신이 온다는 사실보다 확실한 것은 없고,
죽음의 신이 언제 오는가보다 불확실한 것은 없다.




우리가 친한 사람들과 만났을 때 가장 쉽게 하는 말은 "다음에 보자." 서로가 그 말에 수긍하는 이유는 스스로에게 '다음'이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언제까지 '다음'이 허락될까?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흐르고, 다음 뒤에 또 다른 다음이 있음을 알고 있겠지만, 그 끝에는 죽음이 있음을 우리는 모르는 거 같다.



책을 펼치면 그 많은 페이지를 언제 읽을까 싶다. 
하지만 결국에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나는 사람들이 호스피스 병동에 와서 자신의 마지막과 접촉하기를 바란다.
이미 죽음이 등 뒤로 들이닥쳤을 때 호스피스에 오는 것이 아니라,
건강할 때 먼저 세상을 떠나는 선배에게 죽음을 배우길 바란다.




혼자서 배울 수 있는 건 많다. 그런 배움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다. 몇 차례고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복된 경험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터득한다. 하지만 죽음만은 예외다. 신의 농간이지 아니면 배려인지 인간에게 죽음에 대한 반복적 경험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마도 타인에게 관심을 주고, 관계를 맺으며 그 속에서 죽음을 배우길 바라셨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신체부위를 보면 대부분 하나지만 가끔 두 개인 부위가 있다. 
원래 두 개여야 하는 게 정상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두 개인 만큼 하나는 남을 위해 쓰라는 걸지도 모른다."









아름답게 지는 꽃은 없어도
깨끗하게 지는 꽃은 있네요.



죽어가는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앙상해지고 야윌 것이다. 생기는 점차 사라질 것이고, '같은 사람인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변화할 수도 있다. 우리의 생각과 바람과는 달리 죽음은 아름다웠던 우리의 모습을 앗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변화 속에서도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는 있다. 죽음이 외관의 아름다움을 앗아갈 수는 있어도 내면의 순수함마저 앗아가진 않으니.  그러니 잊지 마라. 시들어가는 꽃에도 향기가 남아있음을. 책 중간 쯤에 책갈피로 사용되는 낙엽은 비록 생기 없는, 말라버린 낙엽이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볼품없는 낙엽'으로 보지 않는다. 낙엽 특유의 향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낙엽으로 볼 뿐이지. 



좋은 죽음(Good Death)이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시들어가는 와중에도 꽃이라는 향기와 품위를 유지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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