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여행에 대해 곱씹게해준 영화들
내게는 긴 여행을 부추긴 영화가 몇 편 있다.
<인투 더 와일드>,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그리고 <원 위크>.
이 영화들은 어떤 장소가 주는 여행의 감흥보다는, 삶이라는 여행에 대해 곱씹어 생각하게 해준다. 때로 거창한 이유나 치밀한 준비가 아닌, 무심코 본 사진 한 장이나 영화 한 편이 당신을 길 위로 이끌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인투 더 와일드>에서 주인공 크리스토퍼는 명문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자마자 자신의 전 재산을 빈민구호단체에 기부하고 알레스카를 향해 떠난다. 문명으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달아난 뒤, 자동차를 버리고 주머니에 남은 돈을 낙엽처럼 불태워버리고 두 발로 저벅저벅 자연으로 걸어들어 간다.
그 장면을 보고 누군가는 미쳤다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아깝다고 할 것이다. 오랫동안 꿈꿔온 것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미련없이 놓아버리는 그 장면을 여러 번 돌려보며, 내 마음은 허무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했다. 사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왜 떠나왔느냐고, 여행을 다녀와서는 무엇을 얻어왔느냐고. 혹시 내 대답을 듣는다면 나를 한심하다 여길지도 모르겠다. 아끼다가 닳아 없어져버릴 것 같은 젊음을 낭비하기 위해 떠나왔고, 그것을 한 치의 아낌없이 흥청망청 낭비해버리고 돌아왔다. 긴 시간을 지불하고 얻어온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젊음을 낭비하고 빈손으로 돌아온 게 아닐까 싶다.
여행은 아무리 후하게 값을 쳐준다고 해도 손해를 보는 장사다. 돈과 시간을 지불하고 남는 것은 돈 안 되는 추억뿐이지 않은가. 여행에는 그 어떤 전망도, 부귀도, 명예도 따르지 않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즐거움을 어리석은 방식으로 좇는 것이 여행인 셈이다.
그럼에도 여행은 인생의 한 시절을 그리 흘려보내도 충분히 좋다 느낄 만큼 묘하게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똑똑하게 살아야 한다고 핸드폰마저 스마트폰이라 부르는 세상에서, 여행은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어리석게 사는 법을 가르쳐준다. 나와는 평생 인연이 없을 줄 알았던 장소에 애써 찾아가는 법이나 다시 옷깃을 스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헤프게 웃어주고 시간을 내어주는 법, 마음만 먹으면 매일같이 볼 수 있었던 해돋이를 태어나 처음 보는 사람처럼 가슴 벅차게 바라보는 법 따위를.
여행으로부터 어떤 깨달음을 얻고, 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어 미안하지만, 나는 여전히 한심하고 어리석으며 전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오늘 방황하고 좌절하면서도 내일에 헛된 희망을 품는다. 가진 건 별로 없지만 젊음을 가졌으니 충분하다 느낀다. 여전히 운명적인 사랑과 대책 없이 긴 여행을 꿈꾼다. 여행이 가져다준 유일한 변화는 이 모든 어리석음을 긍정하게 해준 것이다.
> 커버 및 본문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http://movie.daum.net/)
이 포스팅은 <첫 휴가, 동남아시아>의 일부를 발췌하여 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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