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다은 Mar 27. 2016

아이슬란드의 달과 6펜스

그때 그곳의 밤 풍경이 여전히 내게 말을 건다


달빛이 곱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파란 밤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옷을 한 겹 한 겹 차곡차곡 겹쳐 입고 달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밤바다에 달빛이 꼬리를 길게 늘어뜨린 모습이 신비로워서 넋을 놓고 한참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가는 동상에 걸리는 게 아니라 그대로 동상이 될 것만 같은 날씨다.


언 몸을 녹이러 금방 숙소로 돌아왔지만, 밤 풍경의 잔상이 오랫동안 마음에 어렸다. 달이 비단 아이슬란드에만 떠 있는 게 아닌데 이렇게 달빛에 푹 빠져버린 내 마음이 내 것 같지가 않다. 그때는 세상의 고운 것들에 눈길도 주지 않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얼마나 호들갑을 떨며 살았는지.



밤하늘에 뜬 하얗고 둥근달을 바라볼 때면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가 떠오른다. 둘 다 둥글고 은빛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6펜스'는 물질적인 삶, 안정적인 삶, 안일한 삶을 상징하며, '달'은 정신적인 삶, 불확실한 삶, 도전적인 삶을 상징한다. 어느 것을 바라보고 좇아가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이 6펜스 동전이 될 수도, 달이 될 수도 있음을, 고갱의 삶을 모델로 한 화가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을 통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달의 세계를 선택한 주인공들이 그곳에 성공적으로 도달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며,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았다는 점이라는 작품 해석은 지금 아득한 달의 세계를 걷고 있는 나에게 조용한 위로가 되어준다.



어떤 이들은 발치에 떨어진 6펜스를 줍느라 하늘에 달이 떠있는 줄도 모르고, 또 다른 이들은 아득한 달을 바라보느라 발에 치이는 6펜스를 지나쳐버린다. 소유가 주는 행복과 자유가 주는 행복 사이에서 무엇을 택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나저나 왜 6펜스를 손에 쥐고 달을 좇을 수는 없는 걸까. 6펜스의 세계로 돌아가서도 달의 세계를 잊지 않고 살고 싶은데 그건 좀 괴로우려나. 내일 밤 달구경 나가서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페이스북이 알려준 3년 전 오늘, 아이슬란드 여행.

그때 쓴 일기처럼, 6펜스의 세계로 돌아와 달의 세계를 잊지 않고 살아가려니 괴로운 요즘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