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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다은 Apr 17. 2016

가우디의 3차원 캔버스, 바르셀로나

2026년, 바르셀로나에서 만나요


올림픽의 도시, 바르셀로나


1992년 7월, 바르셀로나에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감동과 환희의 축제,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그때 나는 여섯 살 꼬마였기에 올림픽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땡볕에서 달리는 지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선수 덕분에 바르셀로나는 아주 익숙한 지명으로 각인되었다. 외국이라면 다 미국이라고 생각할 무렵이었기에 바르셀로나를 미국의 어느 한 도시쯤으로 기억하긴 했지만 말이다.


지구 반대편 반도에 사는 꼬마의 귀에도 익숙할 만큼 유명해진 바르셀로나는 올림픽 이후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을 맞이했다. 올림픽 유명세를 타고 관광객들이 몰려들었고, 예술가들의 자유로움과 보께리아 시장의 신선함이 넘실거리던 람블라스 거리는 상업화의 물결에 휩쓸려 독특한 매력과 자유로운 영혼을 잃어갔다. 맛없는 레스토랑과 과도한 호객행위, 쇼핑백을 양손 가득 든 관광객, 그리고 그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소매치기의 서성거림이 거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올림픽 이후 급격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바르셀로나는 여전히 예술의 도시로서의 명성을 굳건히 지켜오고 있다. 이 도시에 깊은 애정을 지닌 예술가들이 자리를 지킨 덕분이다. 집안 구석구석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것처럼 바르셀로나에서는 어딜 가든 예술가들의 손길과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가우디가 건축한 건물들과 구엘 공원, 피카소가 미술 공부를 시작한 아카데미와 젊음 시절 방황했던 아비뇽 거리, 대단한 작품인지도 모른 채 무심코 밟고 다녔던 거장 미로의 바닥화까지. 무심코 지나칠 만한 골목 구석구석까지 예술가의 영혼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가우디의 3차원 캔버스


바르셀로나의 또 다른 이름은 ‘가우디의 도시’이다. 잠시 올림픽에 그 이름을 빌려주었을 뿐, 한 세기가 넘도록 바르셀로나는 자타공인 가우디의 도시였다. 도시라는 공간뿐만 아니라 가우디가 활동했던 19세기 말 역시 스페인 건축 역사상 가장 상상력이 풍부했던 '가우디의 시대'였다.


한 예술가의 성격과 성향이 바르셀로나 같은 대도시를 대표할 수 있을까. 도시를 한나절 걷다 보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피카소가 2차원의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다면, 가우디는 도시라는 3차원의 공간에 상상력을 펼쳤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3차원 캔버스인 셈이다.



그라시아 거리에 까사 밀라는 도심 속에서 만난 사막의 신기루처럼 바람의 결을 따라 물결이 이는 것만 같다. 까사 밀라의 옥상과 굴뚝, 환기탑마저도 가우디의 손을 거쳐 상징과 은유의 옷을 입고 작품의 일부가 되어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한 까사 바뜨요는 원래는 평범하고 밋밋한 건물에 지나지 않았지만, 가우디가 독창적인 디자인을 입히며 알록달록한 무늬와 구불구불한 곡선이 살아 있는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외관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빨리 맛보아야 할 것처럼 어서 다가가 만져보고 싶어 진다. 알록달록한 유리창과 기괴한 모양의 발코니, 부드러운 곡선의 천장과 모자이크 타일로 뒤덮인 옥상까지, 마치 동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만 같다.




가우디의 건축은 현재 진행형


건축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가우디는 74세의 나이에 전차 사고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수도자처럼 오로지 건축에만 전 생애를 바쳤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 설계 일에 빠져 자기 자신조차 돌보지 않았던 초라한 행색의 가우디가 전차에 치였을 때, 아무도 그가 위대한 천재 건축가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는 뒤늦게 병원에 옮겨져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로마 교황청의 배려로 가우디는 성자들만 묻힐 수 있는 자기 자신의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지하 납골당에 묻혔다. 자기 자신이 설계했지만 크나큰 배려를 받아야만 그곳에 묻힐 수 있다니. 어찌 되었든 교황청의 은혜로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묻힌 가우디의 영혼은 지금도 미완의 대작을 짓고 있을 것이다.


가우디가 죽은 지 80년도 더 지났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여전히 공사 중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생전에 완성되지 못할 것을 알고 있던 가우디는, 자신의 생을 초월해 성당이 완성될 수 있도록 사후 건축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성당 외부에는 노란 타워 크레인과 뾰족한 첨탑이 하늘 높이 솟아 있고, 내부에는 투명한 유리창들이 알록달록한 색깔을 입으며 스테인드 글라스로 거듭나고 있다. 여전히 건물 안 곳곳에는 색을 입지 않은 유리가 눈부신 햇살을 그대로 맞아들이고 있다.



가우디가 죽은 지 100주년(2026년)이 되는 해에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완공될 예정이다. 가우디 기념의 해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느리고 더디게 공사를 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유럽의 내로라하는 성당이 완공되는 데에 수백 년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100년 정도는 가히 애교라고 할 만하다. 어쨌든 내 살아생전에 완공된다고는 하니 기다려볼 만한 시간이다.


2026년 그날이 올 때까지 바르셀로나 시민들과 그곳을 스쳐가는 여행자들은 역사에 길이 남을 한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감상하게 될 것이다.






이 포스팅은 <올라! 스페인>의 일부를 발췌하여 편집한 글입니다. <올라! 스페인>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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